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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한파[횡설수설/송평인]

입력 | 2019-11-15 03:00:00


찾아보니 2014년 ‘8년 만의 수능 한파’란 기사가 있다. 2014년으로부터 8년 전인 2006년에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에 한파가 몰아쳤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01년 영하로 떨어졌고, 그 전에는 1997년과 1998년 2년 연속 영하로 떨어졌다. 2014년 후로는 2017년에 이어 올해 다시 영하로 떨어졌다. 서울 지역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 것을 기준으로 하면 1994년 수능이 시작된 이후 올해까지 7번 수능 한파가 찾아온 셈이다.

▷평년 기온과의 차이가 3도 이상 낮은 것을 기준으로 해도 큰 차이는 없다. 이 경우 2010년을 추가해 8번 수능 한파가 찾아왔다고 할 수 있다. 확률적으로 26분의 8, 즉 약 30%다. 실은 평년기온보다 5도 이상 높은 유난히 따뜻한 수능일도 몇 차례나 있었고 예년과 기온이 비슷한 수능일은 더 많았다. 그러나 그런 건 기억에 별로 남지 않는다. 기억이란 수학적이 되지 못해서 소풍날은 비온 것만 오래 기억에 남고 수능일은 한파가 몰아친 것만 오래 기억에 남는다.

▷머피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나에게만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법칙이다. 슈퍼마켓에 줄을 서면 꼭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든다. 실은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느낄 뿐이다. 슈퍼마켓 계산대가 5개 있다고 치면 내 줄이 가장 먼저 줄어들 확률은 5분의 1에 불과한 반면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들 확률은 5분의 4다. 수능일에 꼭 한파가 몰아친다고 느끼는 데도 비슷한 착각이 있다.

▷우리나라는 수능이 11월에 치러진다. 11월은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환절기로 날씨의 변화가 큰 시기다. 일본판 수능인 대학입시센터 시험은 1월에 치러진다. 1월은 한겨울이라 추운 게 당연하고 오히려 따뜻하면 뉴스가 되는 시기다. 중국판 수능인 가오카오(高考)는 6월 치러진다. 2002년까지는 7월에 치러졌다. 6, 7월은 베이징을 기준으로 하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다. 같은 환절기라도 시험 보는 사람은 갑자기 더워지는 것보다는 갑자기 추워지는 것에 더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일본만 해도 대학입시센터 시험을 이틀에 걸쳐 치른다. 중국의 가오카오는 사흘 동안 본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2주간에 걸쳐 6일간 치른다. 미국의 SAT는 1년에 7차례 볼 수 있다. 우리만 유독 하루에 수능을 끝내버리다 보니 인생에서 수능일 하루의 컨디션이 무척 중요해지고, 날씨에까지도 수험생이나 학부모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이 수능 한파란 말 속에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