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월 한국전자IT산업 융합전시회에서 LG전자의 가정용 맥주 캡슐머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동아일보DB
유근형 산업1부 기자
7월 LG전자가 캡슐형 수제맥주 제조기 ‘홈브루’를 출시하면서 집에서 손쉽게 수제 생맥주를 만들어 마시는 시대를 열겠다며 이렇게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혁신 제품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LG의 꿈은 약 4개월이 흐른 현재까지 제자리걸음 상태다. 복잡한 규제와 행정절차 탓에 홈브루의 맥주 맛을 알릴 시음행사조차 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음행사를 열려면 주세법에 따라 주류 제조면허가 필요하다. 그런데 주류면허를 따려면 양조장 시설이 필요하다. 술을 본격적으로 팔지도 않는 LG는 이 때문에 한국 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영국대사관에서 1회성 시음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세무서 등은 규제 샌드박스 승인은 양조장이 없어도 주류면허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만 부여한 것이지, 면허를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LG전자는 다시 주류 임시면허 발급 절차를 밟아야 했다. 임시면허를 받는 데 길면 한 달이 걸린다. 면허 취득 뒤에는 한 달가량 맥주 품질에 대한 검정도 받아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 신청부터 승인까지 약 한 달 반이 걸렸는데, 앞으로도 석 달 이상이 지나야 시음회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에 들어가면 사업이 바로 진행될 줄 알았다가 이후의 규제가 더 많아 좌절한 사례는 더 많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류를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대형 주류업체와 전자업체를 같은 잣대로 규제하는 건 난센스”라며 “샌드박스의 취지가 모래밭은 안전하니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마음껏 뛰어놀아 보라는 건데,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어찌됐든 LG전자는 임시면허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후에도 한 가지 걸림돌이 더 있다. 주류 제조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서울 금천구에 있는 LG전자 하이플라자 본점에서만 홈브루로 맥주를 제조해야 한다. 지방에서 시음행사를 하려면 금천구에서 만든 맥주를 들고 내려가야 한다. 대기업조차 이럴진대 돈 없고 아이디어만 있는 스타트업들은 오죽하랴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유근형 산업1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