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월 29일, 경기도·시흥시가 시흥시 정왕동에 '서부 경기문화창조허브' 개소식을 진행했다. 서부 경기문화창조허브는 판교, 광교, 북부에 이어 오픈한 네번째 경기문화창조허브다. 경기도와 경기콘텐츠진흥원이 문화콘텐츠 분야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창업지원시설 경기문화창조허브는 아이디어 보유자와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기업을 연결하고, 창업 자금을 지원하며,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전문가를 매칭하는 등 예비 창업자와 스타트업을 위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부 경기문화창조허브 전경
특히, 시흥에 오픈한 서부 경기문화창조허브는 제조업 밀집지역인 시화·반월산업단지와 연계해 제조업 기반 융복합콘텐츠 산업 분야에 집중했다. 전통적인 제조업에 기술과 문화·콘텐츠적 요소를 접목, 새로운 분야의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지원해 주조, 금형, 용접 등 다양한 제조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이 많은 지역 특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에 IT동아는 서부 경기문화창조허브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제조·콘텐츠분야 스타트업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살아 있는 현장에서 실제 겪고 있는 어려움 등을 전하고자 한다. 이번 인터뷰는 기존 공장 설비를 개선해 업무 효율을 개선하고,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낮춰 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 중인 '하우투머신(HOW TO MACHINE)'의 손현승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산업 현장 업무 시스템을 개선한다는 것
손현승 대표(이하 손 대표): 하우투머신은 산업 현장의 업무 효율 향상과 산업재해 방지를 위해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기자의 요청에) 산업 현장은 발전하는 IT 기술 속도와 비교해 많이 정체되어 있다. 여러 이유 때문이다. 아직 이전 방식을 고집하는 현장이 많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빠르게 변화할 수 없는 현장 특유의 어려움 때문이다. 대부분은 안전에 따른 규제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장비가 시중에 개발되더라도 산업 현장에서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 기존 장비에 묶여 있는 현장 업무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일례로, 현장 작업자는 매일 작업일지를 작성한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업무 프로세스다. 이는 우발적인 행동이나 실수를 방지해 위험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만큼 새로운 업무 프로세스로 변환하는 것이 어렵다. 합리적이면서, 불합리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하우투머신 손현승 대표
IT동아: 보다 향상된 기술을 적용한 장비가 개발되어도, 현장에서 사용되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손 대표: 맞다. 지자체, 공공 기관, 업체 등 각자의 위치에서 이어 내려온 안전수칙이 있다. 문제는 오래도록 유지된 기존 안전수칙, 업무 방식은 지금 시점으로 보면 불합리하고 불편할 수 있다. 하우투머신은 여기에 집중했다. 작업자가 편할 수 있도록 장비를 개선하고, 업무 효율 높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1시간 걸리는 작업 시간, 15분으로 줄였습니다
손 대표: 개발한 제품의 이름은 '스크레이퍼(Scraper)'다. 몇몇 백과사전에는 스크레이퍼를 표면에서 페인트나 광택제를 벗겨내는 데 사용되는 날이 있는 기구로 소개한다. 비슷하다(웃음).
철판 위를 이동하는 하얀 기계가 '스크레이퍼'다. 출처: 하우투머신
레이저를 이용해 두꺼운 철판을 원하는 모양으로 자르는, 1차 부품 생산 공장이 있다. 음… 예를 들어보겠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TV 등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흔한 전자제품이다. 전자제품은 무엇으로 만드는가. 그 안에는 복잡한 전기회로가 들어가 있고, 각각의 전자제품에 필요한 부품이 들어가 있다.
문제는 레이저로 철판(산업 현장에서 '원장'이라고 한다)을 자르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레이저 가공기로, 레이저를 쏴서 철판을 자르고 나면, 산화반응으로 인해 철판 주변에 융착물(산업 현장에서 '슬래그'라고 한다)이 붙는다. 때문에 한번 작업하고 나면, 작업자가 이걸 수동으로 제거해줘야 한다. 날카롭고, 뜨겁고, 작업 현장이 높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다.
위 사진 중 가운데 과정이 수동으로 제거하는 모습이다, 출처: 하우투머신
IT동아: 정리하자면, 레이저 가공기로 철판을 절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융착물을 현장 작업자가 직접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손 대표: 맞다. 융착물을 닦아내지 않으면, 철판이 평평하지 않고, 우글우글해진다. 정밀도가 낮아지고, 수백만원에 달하는 레이저 헤드(노즐)이 깨질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작업 과정 도중에 계속 청소하는 과정이 들어가야 한다. 작업자도 어렵고, 업무 효율도 떨어지는 것이다.
IT동아: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적인 부분을 해결한 것이 '스크레이퍼'인지.
손 대표: 스크레이퍼는 레이저 가공기에서 발생하는 융착물을 제거하는 기계다. 작업자가 매번 철판 위에 올라가 융착물을 제거할 필요가 없다. 육체 노동이 적고, 넘어지거나 떨어져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자체를 없앴다. 또한, 기존 현장에서 1시간 걸리는 작업을 15분으로 줄일 수 있다. 남은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레이저 가공 후 융착물이 발생하는 과정, 출처: 하우투머신
비효율적인 산업 현장을 개선하고 싶은 목표
손 대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산학협력단에서 연구원, 2011년 하이드로텍(주)에서 1년간 연구원,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홍우산업기계(주)에서 연구소장, 2013년부 터 2017년까지 정한정밀(주)에서 연구소장… 약 15년 가까이 산업 현장에서 관련 업무로 일했다.
그동안 발전소와 제철소 산업설비를 제작하고 개발했다. R&D 지원 사업 성공 건수는 15건. 발전플랜트 장비의 국산화를 이루고 싶다는 꿈이 컸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현대제철, 동부제철과 5대 발전소 등에 필요한 산업설비를 정비하고 필요한 장비를 개발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욕심이 생겼다. 독일, 미국, 일본 등에서 생산된 외산 장비가 대부분인데, 이걸 국내에서 생산하고 정비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고 싶었다.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손현승 대표의 국산화 개발 실적, 출처: 하우투머신
IT동아: 그러다가 하우투머신 창업으로 이어진 것인가.
손 대표: 산업설비에 필요한 '소재 열처리 기술'이 해외와 비교해 국내가 뒤처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기했다. 외산 장비를 분해해서 똑같이 재현해 만들어도 '내구성'에서 차이가 났다. 결과물의 품질은 비슷하지만, 외산 장비는 10년을 사용해도 괜찮지만, 직접 분해해 제작, 완료한 장비는 2년~3년이 지나면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더 연구해보고 싶은 욕심에 독일에 있는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박사 과정을 지원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2017년 겨울, 친구가 운영하는 레이저 가공기 공장을 방문했는데, 작업자가 직접 철판 위에 올라가 융착물을 제거하는 모습을 봤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다(웃음). 직접 올라가서 작업해봤다. 5분 정도 지났을까. 허리가 아프더라. 이걸 매일, 반본적으로 작업자가 교대하면서 24시간 일하고 있었다.
IT동아: 24시간…?
손 대표: 친구 공장에서 가동하는 레이저 가공기는 2대였다. 여기서 일하는 현장 작업자는 6명. 밤낮으로 교대하면서 매달리고 있더나. 더 알아보니, 물량이 몰릴 경우, 3년 전에는 전국의 레이저 가공 업체가 24시간 동안 물량을 생산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3년 전부터 주문이 줄어들면서 부실 업체가 정리되는 중으로 확인했다. 여기 시화·반월단지 내에 150개 정도가 평균 2~3개의 레이저 가공기를 가동 중이다. 전국에 있는 대부분읜 산업단지에도 레이저 가공 업체는 30~40개인 것으로 확인했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작업 환경을 조금만 개선하면, 충분히 생산성을 높이고, 위험한 산업재해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준비하고 있던 박사 과정을 잠시 멈추고, 지금의 하우투머신을 창업했다.
스크레이퍼 개발 당시의 모습
하우투머신에 보내준 지원, 잊지 않겠습니다
손 대표: 친구 공장을 다녀온 것이 2017년 12월이었다. 이후 아이디어를 거쳐 2018년 7월 23일 하우투머신을 설립했다. 이곳 서부 경기문화창조허브의 입주 평가를 통해 사무공간 지원을 받으면서, 여기에 보유되어 있는 다양한 장비를 활용하며 시제품을 개발했다. 초기 창업 자금은 창업진흥원의 '기술혁신형 창업기업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받은 7,100만 원과 기술보증기금을 통해 충당했다. 자연스럽게 나라장터 조달청에 업체로 등록되었고, 벤처 인증도 받았다.
물론, 지금까지 모았던 돈도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 꽤 많이 투자했다. 아내와 함께 여전히 믿어주시는 부모님과 형제, 가족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하우투머신 손현승 대표
IT동아: 완성한 스크레이퍼에 대한 시장 반응이 궁금하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손 대표: 다행스럽게도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 현재 부천시와 인천시, 시화·반월단지 내 레이저 가공 업체와 협의 중이다.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3일까지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2019 독일 국제 아이디어·발명·신제품 전시회'(iENA 2019)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만난 세계한인무역협회(okta)의 독일 프랑크푸르트지회를 통해 영업도 도움받고 있다. 감사할 따름이다.
시장 경쟁력을 증명하기 위한 자료가 있다. 스크레이퍼의 작업 성능은 중급 스킬의 작업자와 비슷하다고 판단했는데, 가동 후 2년이 지나면 설비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편차 없는 작업 결과물도 보장할 수 있다.
서부 경기문화창조허브의 다양한 장비와 포토스튜디오 모습
어느덧 서부 경기문화창조허브에 입주한 지도 1년 5개월이 지났다. 최대 2년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 내년 6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있고 싶은데, 혹 방법이 없을지 궁금하다(웃음). 참 많은 것을 받았다. 주변 산업단지의 현장 정보와 정부의 지원 사업, 4층에 비치되어 있는 3D 프린터 장비 등… 감사하다. 만약 이러한 주변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해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 하우투머신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동아닷컴 IT전문 권명관 기자 tornados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