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근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는 국회에서 JSA(공동경비구역) 대대장이 보낸 문자메시지를 들여다보다 극비 정보를 누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뉴스1
두 북한 선원은 싸우다 사람을 죽인 것(폭행치사)이 아니라 그들과 갈등을 겪어온 선장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선원들도 불러내 타살했다고 했으니 살인범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법대로라면 이들은 추방당해야 한다. 그런데 위 조항은 보호하지 말라고 돼 있지는 않으니, 합당한 사유가 있으면 보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행운을 잡지 못했다. 이 사건을 놓고 법적 논쟁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통일부의 이 같은 판단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북한이탈주민법 근거로 추방
정부는 북한 선원 2명을 추방한 후 이들이 타고 왔던 어선도 예인해 북한 측에 돌려줬다(왼쪽). 안대를 하고 포박된 채 판문점까지 가 강제 추방된 북한 선원들은 북한 군인을 보자 너무 놀라 털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탈주민법’을 적용해 이들을 추방했다. 사진 제공 · 통일부, 채널A 방송 캡처
이때는 검찰도 협조를 한다. 헌법은 북한인을 우리 국민으로 보고 있으니 검찰은 그를 살인 혐의로 기소해야 하지만 기소유예를 하는 것이다. 기소유예란 죄는 있지만 다른 요소를 고려해 기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한 번 봐준’ 것이기에 지은 죄에 대한 공소시효 기간에 다른 범죄를 저지른다면 검찰은 그를 기소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소유예는 항복한 적에게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프가니스탄전쟁 때 미국은 생포한 탈레반 포로를 심문하면서 기소유예를 조건으로 중요 정보에 대한 자백을 유도했다. 우리 역시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긴 했어도 심문 과정에서 북한의 음모를 자백한 이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처분을 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이런 여유는 해당 법의 위헌(違憲)성을 피해가는 통로이기도 했다. 헌법에 따르면 북한은 대한민국 영토니 북한인은 물론이고 탈북민도 우리 국민이 된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북한이탈주민법은 특정 강력 범죄를 저지른 탈북민은 보호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위헌이 된다.
그런데도 위헌 소송이 없었던 것은 이 법을 근거로 추방된 탈북자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실수로 넘어왔다며 귀환을 주장한 북한인은 돌려보냈어도, 안 가겠다고 한 탈북자를 억지로 북한에 보낸 적은 ‘공식적으로는’ 단 한 번도 없다. 남북관계 개선에 노력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그랬다. 그때는 중국 등 제3국 기관에 잡힌 탈북민의 보호가 쟁점이 됐다. 보수 정권은 제3국 군경이나 출입국 관리기관에 검거된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고자 노력했다.
이에 당시 탈북자들은 대한민국 외교 공관에 들어가려 했다. 대한민국 공관은 대한민국 영토이기에 이곳에만 들어가면 ‘싫든 좋든’ 두 정부도 이들을 한국으로 이송해 보호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두 선원이 대한민국 공관보다 더 확실한 대한민국 영토에 들어왔고 귀순의향서까지 작성했음에도 북한이탈주민법을 적용해 추방했으니, 위헌 시비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위헌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당사자가 추방당해 실제로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겠지만, 추후 통일부의 결정이 위헌이라는 시비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점 휴업 상태인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정부는 이곳에서 서면으로 북한 선원을 보내겠다 통보했고, 다음 날 북한은 돌려보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공동취재단
지금 사는 곳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 다른 곳을 동경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다. 탈북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고, 북한에 남은 가족이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여간해선 결행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하는 것은 범죄나 부정행위가 드러났거나 드러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탈북은 대개 이판사판의 절박함에 몰렸을 때 하는 것이다.
두 북한 선원도 김책항으로 이동했다 같이 범행한 한 동료가 검거돼 범행이 발각되자 결사적으로 도주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헌법에 따라 이들을 받아들이고 형법에 따라 살인죄 등으로 기소했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국가안보실의 지시를 받은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법만을 근거로 추방해버렸다. 이러한 통일부의 결정이 잠재적인 탈북자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중 국경을 드나드는 탈북 브로커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자진 신고를 하면 상당한 보상금을 주고 노동당에도 가입시켜준다고 했다. 이렇게 하자 탈북 브로커가 급격히 줄어들어 과거 300만~500만 원 하던 탈북 비용이 3000만 원대로 치솟았다.
두 선원에 대한 적절한 조사가 있었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 소식통은 두 선원이 한국에 온 지 닷새 만에 추방된 점을 언급하며 “닷새면 라포르(rapport)를 형성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라포르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인 이춘재를 재조사할 때도 언급된 프랑스어다. 사전적 뜻은 ‘신뢰관계’다.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감정 기복이 심한 데다 표현 능력이 떨어져 범행 동기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C라고 했다 조사관과 많은 대화로 라포르가 쌓이면 내면에 있던 D를 이유로 댄다. 그리고 더 깊은 대화를 하면 잠재의식 속에 있던 E를 꺼내기도 한다. 프로파일러가 표현력이 부족한 그의 말을 알아듣고 “이런 것이냐”고 정리해주면 비로소 “그런 것이다”라며 홀가분해하는 경우가 많다.
절박한 상황에서 탈북한 사람도 생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감정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다. 타인을 죽이고 왔다면 더욱 그렇다. 이에 합조(과거에는 합동심문이라 했지만 지금은 합동조사로 바뀌었다)에 들어가는 요원들은 근 1주일은 조사하지 않고 담배를 권하거나 가족관계를 묻고 아픈 데는 없느냐는 식으로 인간적인 대화만 한다. 라포르를 쌓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기자는 북한에서 막 나온 사람들과 여러 번 대화해봤다. 그런데 사투리가 심하고, 70년이 넘는 이격으로 달라진 용어가 많으며, 교감 가능한 문화가 매우 적어 심도 있는 대화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곤 했다. 북한인들과 대화하려면 ‘북한말’을 알아야 하는데, 이 분야 전문가가 합조 요원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개개 탈북자의 상황은 알지 못하니 1주일은 눈높이와 마음의 너비를 맞추며 라포르 형성에 주력해야 한다. 그렇게 ‘동조(同調)’가 이뤄져야 비로소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한다.
1주일 걸리는 라포르 형성
1996년 11명을 죽이고 한국에서 재판을 받게 된 페스카마호 사건 주범들. 이들은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인권변호사들의 노력으로 전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최재호 전 동아일보 기자
공작 경험이 많은 한 인사는 “역공(역공작)을 위해서는 매정하게 탈북자를 북한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추방은 역공도 아니었다. 그리고 심각한 ‘정보의 실패’가 발견된다. 정보의 기본은 비밀 유지인데, 국회에 출석한 김유근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수많은 카메라가 있는 데서 JSA(공동경비구역) 대대장이 보낸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다 사진에 찍혔으니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선원을 은밀하게 북한에 보낼 계획이었으면 재빨리 휴대전화를 껐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안 그러면 계속 정보 유출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 사건이 알려졌을 때 적잖은 대북 전문가는 ‘두 선원을 추방한 것은 북한 측에서 살인자가 월남했으니 보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은 아닌가’라고 의심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우리 군의 통신감청으로 살인자가 남한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들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통신감청으로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조사하고, 북한이 송환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추방했으니 이는 ‘알아서 해준 것’이 된다.
정부는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통해 북한과 연락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은 대화창구로 개성공단에 연락사무소를 개소했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북한은 이 창구를 개점 휴업 상태로 만들었다. 우리는 매일 담당자를 내보내지만 북한에서는 나오지 않은 것이다. 10월 15일 열리는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한국 대 북한의 평양 경기를 앞두고 통일부가 여러 차례 남북연락사무소를 두드렸으나 북한은 요지부동으로 응하지 않았다.
북한이 우리 측 연락에 응한 경우는 6월 삼척항으로 들어온 북한 어민을 돌려보내겠다고 통보했을 때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남북연락사무소를 통해 북한 측에 연락했다. 단, 대면으로 하지 못하고 서면으로 했다. 서면을 접수한 다음 날 북한이 인수 의사를 밝혀와 추방했다고 정부가 밝힌 바 있다.
오랫동안 대북 접촉을 했던 한 인사는 “우리 정부가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살리려 선원을 북송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지금 남북관계는 북한의 거부로 완전 단절돼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든 연결해보려 애쓰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을 찾았고, 두 선원 사건이 그것에 해당한다고 본 듯하다. 북한의 송환 요구가 없었음에도 우리 군의 통신감청 작전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들로부터 자백도 받자 북한이탈주민법을 적용해 추방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두 선원을 남북관계를 잇기 위한 희생양으로 이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북·미 정상회담과 페스카마호 사건
지금 한반도 문제에서 정부의 관심사는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국회에 보고했듯이 올해 안에 북한이 평양에서 열려고 하는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다. 이 회담이 성사돼야 김정은의 한국 답방이 가능하리라 보고 국가정보원은 관련 기반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를 어렵게 만들 요소는 미리 제거해나갈 필요가 있다. 두 선원 추방이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 몇몇 전문가의 의견이다.
두 선원이 16명을 살해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1996년 남태평양에서 참치 잡이를 하던 ‘페스카마호’의 재중동포 선원 6명이 선장을 포함한 한국인 선원 7명과 인도네시아인 선원 3명, 재중동포 선원 1명을 살해한 사건과 비슷하다. 사건 이후 살인 혐의자들은 한국으로 넘겨져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2심 재판에서 살인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았다. 한 대북 전문가는 “인권을 강조한 것이 이 정부의 실력자들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