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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열병 발생 두 달…최악 구제역 사태 후 살처분된 돼지 ‘최다’

입력 | 2019-11-17 08:01:00

바이러스 수평전파·남하 막아…접경지 야생 멧돼지선 검출 지속
38만 마리 살처분…2010~2011년 구제역 348만여 마리 이후 최다
김현수 "아직까지 상당히 엄중"…농장 재입식 시기 가늠 어려워
살처분 규모 늘며 핏물 유출 사고…"구제역 때와 같은 문제 반복"




아시아를 덮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서도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지난 9월17일 최초로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 파주 농장이 위치한 지역 내 돼지를 모두 없애는 과감한 방역 조치 덕인지 양돈 농장에선 한 달 넘게 추가 발병이 없다. 하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 멧돼지 수가 농장 내 발생 건수의 2배를 넘기면서 전염병의 최종 종식을 논할 때는 아니라는 평가다.

40만 마리에 가까운 돼지가 한꺼번에 살처분되면서 사체 처리 과정에서 방역 당국의 미흡한 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침출수 유출 등은 과거 구제역 발생 때도 겪었던 문제지만, 대규모 살처분 과정에서의 구조적인 어려움이 개선되지 못하고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8만 마리 살처분…2010~2011년 348만여 마리 이후 최대

17일 ASF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인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ASF는 현재까지 사육 돼지에서 14건, 야생 멧돼지에서 25건 발생했다. 발생지는 모두 경기 파주시와 김포시, 연천군, 강원 철원군, 인천 강화군 등 북부 지역에 집중돼 있다.
집돼지(사육 돼지)에서의 마지막 발생일은 지난달 9일이다. 기존의 긴급행동지침(SOP)을 뛰어넘는 고강도 방역 조치로 발생지 내 축사가 모두 비워지면서 농장 간 수평 전파와 바이러스의 남하를 막는 데까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정부에서 수매하거나 살처분하는 방식으로 ASF 발생 시·군에서 사라진 돼지 수는 총 44만6520마리에 이른다. 이 중 살처분된 규모가 38만963마리로, 연천군(16만4281마리)과 파주시(11만458마리) 소재 축산 농가의 타격이 큰 상황이다.

2010년 사상 최악의 구제역 사태가 벌어지면서 348만여 마리의 돼지가 묻혔던 때를 제외하면 전염병 발생을 계기로 가장 많은 돼지가 목숨을 잃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구제역으로 가장 많은 돼지가 희생된 때는 2010 10월~2011년 11월(347만9962마리) 다음으로 2014년 12월~2015년 4월(17만2798마리)이었다.

SOP에 따르면 살처분 조치를 취한 농장에서 돼지를 재입식하려면 4대 권역을 중심으로 내려진 이동 제한 조치가 해제된 후 최소 40일이 지나야 한다. 동시에 이동 제한 해제 후 일주일이 경과된 시점부터 생후 60~70일의 돼지를 돈사별로 3마리 이상씩 입식해 60일간 경과를 체크하는 입식 시험도 거쳐야 한다. 경기·강원 북부에 내려진 방역 조치가 완전히 해제된 후에도 두 달간의 시간이 더 필요한 셈이다.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이 “아직까지 상당히 엄중하다”며 당분간 접경지에서의 방역 수준을 조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재입식 시점을 가늠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시가 기준 100%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축종·용도별로 시세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시세 평가 전이라도 추정액의 50%를 우선 지원한다. 월 최대 337만5000원의 생계안정자금도 최장 6개월까지 지급한다. 이밖에 1년 이내에 원금 상환이 도래하는 정책 자금의 상환 기간을 2년 더 연장해주기로 했다. 연장 기간엔 이자도 깎아준다. 단, 농축산경영자금, 사료구매자금 등 단기 자금은 연장 기간을 1년으로 한정한다.

살처분 보상금은 기본적으로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농특회계)에서 충당된다. 행정안전부에서도 74억원 규모의 재난안전 특별교부세를 지원키로 했다. 살처분 집행 경비 부담을 지방자치단체에서 오롯이 떠안고 있다는 지적에 법령(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령)을 고쳐 국비 지원 근거를 만들기도 했다.

◇살처분 규모 늘며 침출수 유출 사고도…“구제역 때와 같은 문제 되풀이”
멧돼지 포획과 함께 이례적인 규모의 돼지 사체를 처리하는 작업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허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매몰지를 찾지 못해 쌓아 둔 돼지 사체에서 나온 핏물이 상수원과 연결되는 소하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중수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은 약 두 달여 만에 공식 언론 브리핑을 열고 살처분 후 사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단, 환경 검사 결과 수질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ASF SOP를 보면 돼지 사체를 처리하는 방식이 상세히 규정돼 있다. 기본적으로 살처분된 돼지는 액비 대형 저장조 또는 간이 섬유강화플라스틱(FRP), 렌더링(Rendering, 사체를 고온·고압으로 처리해 기름 등으로 분리하는 조치), 소각, 미생물 처리 등 친환경적 방법으로 처리하되, 이 방법이 곤란할 땐 매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특히 매몰 시에는 사체의 신속한 분해와 함께 악취 제거, 침출수 증발 등을 위해 미생물 처리를 권장하고 있다. 매몰한 날부터 최소 21일 이상은 침출수가 상부에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SOP에 명시돼 있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사체 규모가 가장 컸던 연천군이었다. 매몰지 확보가 늦어진 데다 밤새 비가 내리면서 생긴 실수였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SOP에선 매몰지 내부와 외부에 모두 침출수를 배출할 수 있는 저류조를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다. 우천 시 빗물에 의한 매몰지 유실을 방지하기 위한 배수로도 설치해야 함이 명시돼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SOP대로 처리했다면 침출수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 맞다”고 했다. 저류조와 배수로는 핏물이 유출된 후 뒤늦게 설치됐고 김 장관은 “미흡한 점이 있었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김 장관은 연천군 외 침출수가 나온 곳이 없다고 공식화했지만, 살처분 규모가 두 번째로 많은 파주시 공동퇴비처리장에서도 퇴비 침출수가 흘러나온 것이 확인됐다. 중수본은 연천군에 이어 파주시에도 합동 점검반을 파견해 47개의 FRP 매몰지를 긴급 점검하고, 렌더링 잔존물을 퇴비로 만들기 위해 쌓아둔 장소에서도 침출수 여부를 확인·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정승헌 건국대 축산학과 교수는 “짧은 시간 내에 특정 지역 내 모든 돼지를 대규모로 살처분하다 보면 사체 처리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과거 구제역 때도 집단적 살처분 과정에서 SOP와는 다른 조치들이 취해지면서 침출수 유출 등의 문제가 발생했었다”고 언급했다. 정 교수는 “정부는 과학적 분석을 통해 수질에 문제가 없다며 결론 지을 것이 아니라 핏물을 직접 목격한 인근 주민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