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정부의 유류세 인상이 촉발… 폭력 피로감에 올해 중반 약화돼 최근 1주년 맞아 “분노 여전” 시위… 연금개편 불만 커져 확산 가능성
“우리는 여기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원치 않더라도 우리는 여기 있다.”
16일 ‘노란조끼’ 시위 1주년을 맞아 파리를 비롯해 리옹, 마르세유 등 프랑스 주요 대도시에서 열린 대규모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부른 노래다.
이날 파리의 노란조끼 시위대는 오전부터 시내를 행진했다. 시위 1주년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 국기를 흔들고 북을 쳤다. 마크롱 대통령의 얼굴을 영화 속 악당 ‘조커’처럼 분장시킨 사진을 든 시위대도 있었다. 형광빛 조끼 뒤에는 ‘분노한 군중’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시위에 참석한 코렝탱 씨(28)는 AP통신에 “노란조끼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몽펠리에에서 파리로 왔다”고 했다.
노란조끼 시위는 지난해 11월 17일 프랑스 정부의 유류세 인상 계획에 반대하면서 시작됐다. 시위는 양극화와 기득권에 대한 분노로 확산되면서 매주 토요일 전국 도심에서 펼쳐졌고 마크롱 대통령 퇴진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대 280만 명에 달했던 참가자 수는 올해 중반 들어 수천 명대로 감소했다. 일부 급진층의 지나친 폭력 시위가 계속되자 시민들의 피로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노란조끼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 27%까지 하락했지만 현재 30% 후반대로 반등했다.
그럼에도 노란조끼 시위가 프랑스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올 9월 프랑스 정부는 가계가 부담하는 세금을 93억 유로(약 12조2000억 원)로 삭감하는 내용의 2020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10월에는 상류층 중심 엘리트 고등교육기관 그랑제콜에 차상위계층 선발을 늘리는 정책도 내놨다. 부의 대물림 고착에 대한 시위대의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
프랑스 사회에서 사라지던 참여 민주주의 정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나타샤 씨는 “이제는 대의 민주주의보다 참여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했다. 시위에 다시 동력이 생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편에 시민들의 불만이 커진 데다 최근 리옹의 한 국립대 재학생이 생활고를 호소하며 분신하면서 대학생 시위도 전국적으로 확산 중이기 때문이다. 노란조끼 시위대는 다음 달 5일 연금 개편 반대 총파업과 연계해 집회를 열 계획이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