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전 1000명을 살린다]<20> 바르셀로나의 ‘슈퍼블록’ 성과
지난달 8일(현지 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도심 슈퍼블록 구역 내에 설치된 테이블에 앉아있다. 테이블이 설치된 이 공간은 원래 자동차가 다니던 차로였다. 바르셀로나=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지난달 8일(현지 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중심부에 있는 산안토니 지역. 왕복 2차로 중 한 차로엔 차량 통행을 금지하는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왕복 2차로였지만 차량은 한쪽 차로로만 다닐 수 있게 돼 있었다. 차량의 최고 제한속도는 시속 10km였다. 차량 통행이 금지된 나머지 한쪽 차로엔 대형 화분 수십 개가 놓여 있었다. 화분 주위 곳곳엔 성인 예닐곱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이곳의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은 청년 일행은 노트북 컴퓨터를 켜놓은 채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선 한 중년 남성이 휴대전화로 통화하면서 태블릿PC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왕복 2차로는 바르셀로나시가 지정한 ‘슈퍼블록’ 구역 안에 있었다.
슈퍼블록은 한국의 행정구역 단위인 ‘통’, ‘반’처럼 바르셀로나시의 기본 행정구역 단위인 ‘만사나’를 가로, 세로 방향으로 3개씩 모두 9개를 묶은 ‘수페리야’를 가리키는 말이다. 1개의 슈퍼블록은 대개 가로, 세로 약 400m로 5000∼6000명이 거주한다.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정사각형 모양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만사나 대여섯 개를 묶어서 만들기도 해 모양은 다양하다. 바르셀로나 시내에는 모두 33개의 슈퍼블록이 있는데 시 전체 면적의 21%를 차지한다.
이날 기자는 산안토니 지역을 포함해 포블레노우, 레스코르트스 등 바르셀로나시 내의 슈퍼블록 3곳을 둘러봤다. 슈퍼블록 구역에서는 거주자 차량과 경찰차, 구급차, 택배 차량만 다닐 수 있게 돼 있었다. 주민들의 일생생활이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차량만 슈퍼블록 안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슈퍼블록에선 차량 통행보다는 보행자의 이동권과 안전이 우선이었다. 자동차는 한 방향으로만 다닐 수 있게 했고, 시속 10km를 넘는 빠르기로는 주행할 수 없도록 속도 제한도 엄격히 하고 있었다. 이런 제한 때문에 슈퍼블록으로 지정된 구역은 지정 전에 비해 차량 통행량이 평균 50∼65%가량 감소했다.
바르셀로나시가 슈퍼블록을 지정하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다. 도심에서의 차량 증가와 이에 따른 교통난으로 시민 불편이 커지고 교통사고에 대한 우려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시는 슈퍼블록 조성에 나선 이후 대중교통 확대를 위해 버스 노선 11개를 새로 만들었고 버스 노선망을 다이아몬드 형태로 구성해 시내 전체 면적의 67%를 버스로 접근할 수 있게 했다. 또 자전거의 수송 부담률을 높이기 위해 모든 시민들이 집에서 300m 정도만 이동하면 자전거 도로에 이를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까지 최근 3년 바르셀로나시의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2.7명으로 스페인 전체의 3.9명보다 낮다. 전체 교통사고의 60% 이상이 도심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스페인 정부는 슈퍼블록을 도심 사고율을 낮출 수 있는 해결책의 하나로 보고 있다.
장수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슈퍼블록은 보행자나 자전거처럼 사람이 주체가 되는 교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지역과 지역을 잇게 만드는 개념”이라며 “국내에서도 교통안전과 보행자의 이동권 향상, 도시환경 개선을 위해 슈퍼블록 같은 환경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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