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박제균 칼럼]이제 박근혜를 말할 때 됐다

입력 | 2019-11-18 03:00:00

‘朴 사면→보수 분열→총선 패배’… 한국당도 朴 석방 논의 꺼려
朴, 全·盧보다 오래 감옥생활… 석방, 총선 카드 아닌 國格 문제
황교안, “朴 석방” 본격 제기하라… 보수통합도 석방論 연대해야




박제균 논설주간

언제부턴가 ‘박근혜 사면=보수 분열’이란 등식이 정치권의 공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석방된 박 전 대통령이 목소리를 내는 순간, 보수 세력은 찬탄(贊탄핵)과 반탄(反탄핵) 진영으로 쪼개진다는 것. 이에 따라 박근혜 사면(형 확정 시) 또는 형 집행정지가 다섯 달도 안 남은 총선에서 여권에는 필승카드로, 보수 야권에는 최대 악재(惡材)로 작용할 거란 얘기다.

그래서인지 자유한국당에서도 박근혜 사면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미약하다.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는 물론이고 친박(친박근혜)들조차 공개적으로 박근혜 석방을 말하길 꺼리는 분위기다. 황 대표는 3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석으로 풀려났을 때와 그 다음 달에 여성인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을 우려하며 ‘국민의 의견과 바람’을 빗대 우회적으로 석방을 요구한 바 있다.

전직 대통령의 사면 문제를 총선 유불리 카드로 보는 대한민국 정치권의 담론 수준이 참으로 실망스럽다. 더구나 박 전 대통령이 몸담았고, 개중에 적지 않은 사람이 박근혜 간판으로 금배지를 단 한국당마저 그의 석방을 입에 담길 주저하는 작태에 절망감마저 느낀다. 이러고도 제1야당인가.

물론 박근혜 탄핵이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위임한 대통령 권력을 사유화하고 사인(私人)에게 넘겨서 국민의 신임을 배신한 행위는 탄핵받아 마땅했다. 그에 따라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르는 것도 불가피했다고 본다.

더러는 박근혜 탄핵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했고, 그 결과 불과 2년 반 만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황당한 나라가 펼쳐졌다고도 한다. 하지만 돌아보라. 문 대통령은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가 터지기 훨씬 전인 2016년 하반기부터 선거일까지 출마 후보 가운데 부동의 1위였다. 박근혜 탄핵이 문재인 집권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을 순 있어도 문 대통령이 박근혜 탄핵 때문에 집권했다고 보는 건 단견(短見)이다.

따라서 박근혜 탄핵이 부당했기에 석방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박근혜 석방은 총선 카드와 같은 정치공학으로 접근할 문제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격(國格)과 수준의 문제다. 굳이 한국 대통령의 비극사를 주워섬기지 않더라도 선진국 또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 가운데 전직 대통령이 2명이나 구속돼 재판을 받는 나라가 있을 리 없다.

더욱이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31일 국정농단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뒤 올해 9월 16일 외부 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2년 반가량이나 감옥에 있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하고 천문학적 비자금을 챙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2년 남짓보다 훨씬 긴 수형(受刑) 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어깨 수술과 재활 과정이 끝나면 다시 구치소로 돌아가야 할 처지다. 67세 여성 전직 대통령을 얼마나 더 감옥에 두어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무엇보다 박근혜가 감옥에 있는 한 대한민국 정치는 과거에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다. 내우(內憂)와 외환(外患), 안보와 경제 위기가 겹친 이 엄혹한 시기에 국격과 국민통합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털고 미래로 갈 때가 됐다.

그러기에 한국당의 황 대표부터 본격적으로 박근혜 석방을 말해야 한다. 청와대가 박근혜 석방을 총선 카드로 쓸지, 말지 눈치를 보는 듯한 태도로는 여권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황 대표가 먼저 박근혜 석방의 기치를 높이 든다면 여권의 총선 카드로서의 효용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가 주장하는 보수 통합도 박근혜 문제를 피하고서는 온전한 합의를 이룰 수 없다. 먼저 박근혜 석방론이라는 끈으로 묶어서 연대하고 다가온 총선에 임할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석방되면 그의 성격상 탄핵과 수감의 한풀이를 통해 보수 세력을 분열시킬 거란 관측도 많다. 과연 그럴까. 소위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근혜가 자칫 좌파 장기집권의 초석을 깔아줄지 모를 중차대한 총선을 앞두고 보수 필패(必敗)의 길로 갈까.

박 전 대통령도 ‘보수 분열의 원흉’으로 역사에 남으려 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만에 하나, 박근혜가 그릇된 선택을 하려 한다면 지금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심히 우려하는 대다수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