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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조건서 경쟁하게 해달라[현장에서/김재형]

입력 | 2019-11-18 03:00:00


지스타에 참가한 중국 게임사 미호요 부스.

김재형 산업1부 기자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 ‘지스타(G-STAR) 2019’가 17일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갈아 치우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역대 최대 규모(부스 3208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지난해보다 3.9%가 늘어난 24만4309명이 몰렸다. 숫자로만 보면 각종 악재가 겹친 국내 게임 업계가 모처럼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알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행사 내면을 뜯어보면 중국에 안방 시장을 내주고 있는 국내 게임 업계의 씁쓸한 현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서다.

이번 지스타에는 중국 텐센트의 자회사들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메인 스폰서로 참여했다. 지난해에는 에픽게임즈, 이번엔 슈퍼셀이 지스타의 ‘안방마님’ 행세를 했다. 텐센트가 최대 주주인 라이엇게임즈(LOL 운영사)도 이번에 처음으로 신작(레전드 오브 룬테라) 체험관을 꾸리며 행사장 분위기를 주도했다.

여기에 미호요, IGG, 엑스디글로벌 등 중국 게임사가 전시관의 노른자위 격인 입구와 중앙을 차지했다. 신작 준비 등의 이유로 불참한 넥슨과 엔씨소프트 등 토종 업체들의 빈자리를 중국이 대신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펄어비스와 크래프톤 등 ‘신예’들이 신작 발표회와 체험관을 열어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는 평가다.

중국계 게임사가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전시회뿐만이 아니다. 17일 기준 애플리케이션 마켓인 ‘플레이스토어’의 국내 게임 부문 인기 순위에서 ‘라이즈 오브 킹덤즈’(3위) ‘붕괴 3rd’(6위) ‘라플라스M’(9위) 등 중국계 게임 다수가 상위권을 휩쓸었다. 반면 중국 당국은 일본 게임업체 등에는 게임 유통허가증(판호)을 새로 내주면서 유독 한국 업체에만 사드 논란 이후 판호를 제한해 수출길이 꽉 막혀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 경쟁 구도’는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당국은 최근 자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심야 게임을 제한하는 ‘게임 셧다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자국 시장이 막힌 중국 업체들의 한국 시장 진출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중국 게임 업체들이 이젠 기술력까지 갖추면서 국내 업계의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중국의 판호 발급 중단 사태를 해결해줄 정부의 외교력은 의심스럽고, 내년부터 300인 미만 사업장에도 일괄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중국과의 생산성 경쟁에 미칠 악영향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부적절한 광고에 대한 사후 제재는 필요하긴 하지만 사실상 국내 업체에만 적용된다.

다행히 이번 지스타에 참석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내년 초 게임산업 중장기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불필요한 규제 개선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젠 골리앗이 돼버린 중국 게임사와 동등한 조건에서 싸울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역차별 요소 제거라도 해 달라”는 업계의 간절한 목소리를 장관이 꼭 기억해 주기 바란다.

김재형 산업1부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