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불붙는 모병제 공방… 與 민주硏 “저출산에 병력난 극심 2025년부터 단계적 모병제 필수… 숙련병 늘어 전투력도 한층 상승” “北 정규군만 128만명… 핵위협도… 25만명 수준 모병제는 자해행위 가난한 청년만 입대 우려” 반론… 年 9조원 추정 재정부담도 난제 정략 아닌 안보 차원 득실 따져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 논산=뉴스1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휴전과 남북 대치 상황에서 병역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다. 취업과 병역이 ‘지상과제’로 닥친 20대 청년층에게 모병제 공약의 파급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논란이 커지자 국방부는 일단 모병제 도입을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의 ‘표심 경쟁’이 가열되면서 다시 한번 이슈로 부상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병력 의존형 군대’ 한계 봉착하며 모병제 거론
병력 부족 사태는 이미 비상등이 켜졌다. 인구 감소로 병역의무자가 줄면서 육군은 8개 군단을 2022년까지 6개로 줄여서 3만 명을 감축할 계획이다. 정부는 내년에 병역법을 고쳐서 귀화자에게도 병역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군도 간부 및 여군 확대, 의경 등 전환복무 폐지, 대체복무 축소 등 갖은 대책을 짜내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이 1.0도 안 되는 초저출산의 고착화로 2030년대 중반부터는 지금의 병력 수급 시스템이 지속되기 힘들다는 것. ‘인구절벽’에 따른 초유의 병력 부족 사태에 대처하려면 병역 제도의 원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 이유다.
물론 모병제가 갖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본인이 선택한 군 복무여서 의무복무보다 더 책임감을 갖게 되고, 전문기술 요원과 숙련병 확보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직업군인으로 군이 채워지면 지휘 통솔이 용이하고, 병영 악습도 사라져 전투력이 더 강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 안보·경제 무시한 ‘군(軍)퓰리즘’
예산 문제도 큰 걸림돌이다. 모병제는 많은 재원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직업군인에게 소요되는 인건비(봉급, 수당, 연금 등) 등 직간접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연구원에 따르면 모병제 전환 후 병사 25만 명에게 월 300만 원을 지급하면 매달 7500억 원, 연간 9조 원이 들어간다. 올해 국방예산(약 46조7000억 원)의 19%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군 관계자는 “병력 공백을 메울 첨단전력 도입과 간부 월급 인상 등을 감안하면 모병제를 유지하려면 국방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4%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GDP 대비 2.6% 수준의 올해 국방예산으론 턱없이 부족하고, 경제침체 심화로 국방비의 대폭 증액도 힘든 현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모병제를 해도 병력난이 해소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많은 봉급을 줘도 병 신분으로 장기복무를 자원할 사람이 태부족할 수 있다는 것. 모병제와 비슷한 유급지원병(군 복무 후 6∼18개월 전문하사로 근무) 제도도 2013∼2015년 평균 운영률(정원 대비 운영 병력)이 50%를 밑돌고 있다.
국방부 산하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2017년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모병제로 전환해 병력 30만 명을 유지하려면 20세 인구의 지원 입대율이 현재(4.5%)의 2배 이상인 9.5%는 돼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군 관계자는 “대만은 2008년부터 단계적 모병제를 추진했지만 낮은 지원율로 계속 늦어지다 작년 말에야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며 “미국 등 모병제 국가 중 다수가 모병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선거철마다 ‘이슈화’되지만 반대 여론이 우세
문재인 대통령은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시절 한 간담회에서 “앞으로 군대는 징병에 의존할 게 아니라 제대로 처우해 주면서 모병제로 발전해야 한다”며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에는 “모병제는 훨씬 미래의 일이고, 통일 이후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한발 물러섰다.
최근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연구원이 제안한 모병제의 찬성은 33.3%, 반대는 52.5%로 집계됐다. 찬성 응답이 2012년(15.5%)과 2016년(27.0%) 여론조사 때보다는 높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게 국민적 총론으로 분석된다.
○ 징병제 환원 국가도, 안보 최우선 고려해야
하지만 최근 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징병제로 환원하는 국가도 늘어나고 있다. 2010년 모병제를 채택했던 스웨덴은 러시아의 위협이 고조되자 2017년에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우크라이나(2014년), 리투아니아(2015년), 노르웨이(2016년)도 같은 이유로 징병제를 다시 도입했다.
군 안팎에서는 병역 제도가 ‘강한 군대’의 전제조건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정예강군은 군 구조 개선과 전력 증강, 병영문화 개선 등 다각적 노력의 산물이지 병역 제도만 바꿔선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시한을 정해두고 모병제를 강행하기보다 지금처럼 징병제의 틀 속에서 예산과 병력 수급 상황 등을 고려해 모병제 요소를 늘려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모병제를 정략적 방편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는 비판도 많다. 군의 근간인 병역 문제는 관련 부처와 전문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안보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최대한 신중히 검토해야 하는데 표심 잡기나 당리당략 차원에서 불쑥 던지는 것은 ‘안보 포퓰리즘’만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군 고위 당국자는 “지금과 같은 모병제 논의는 순서가 뒤바뀐 것”이라며 “현재 우리가 직면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의 대처 방안부터 확실히 강구한 뒤 이를 뒷받침하는 병역 제도 개편 등 전반적 안보 현안을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검토하는 게 바른 수순”이라고 말했다. 모병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안보를 도외시한 국론 소모전이 되지 않도록 정치권과 군이 각별한 관심을 경주해야 할 때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