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이코노미 시대 변해야 살아남는다] <5> 지구촌 곳곳 ‘부동산 거품 경고음’
1일 오후 덴마크 코펜하겐 ‘덴쇤데르위셰뷔’ 지역 주택가의 모습. 현지 주민들이 글로벌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투자로 임대료가 오를 조짐을 보이자 이에 반대하며 ‘100년 된 주택들의 가치를 보전해야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다. 코펜하겐=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1일 오후 본보 취재팀이 찾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덴쇤데르위셰뷔’ 지역. 이곳에는 미국계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부동산 투자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나부끼고 있었다. 임대주택 300가구가 모여 사는 이 오래된 동네에선 최근 블랙스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서면서 임대료가 급격하게 오를 것이라는 불안감이 주민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었다. 현지 주민 A 씨는 “투기 자본이 우리 동네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임대료가 치솟으면 우리 모두 쫓겨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장률과 금리, 물가가 크게 떨어지는 ‘제로이코노미 시대’에 접어들면서 세계 각지의 부동산 시장이 이상 과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증시 침체와 금리 하락으로 돈 굴릴 곳이 없어진 다국적 사모펀드나 자본이 해외 투자를 활발히 하면서 각국의 집값을 밀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 각지에 버블 우려 확산, 주민들은 임대료 고통
최근 부동산 시장의 과열이 두드러진 곳은 수년 전부터 마이너스 금리가 본격화된 유럽이다. 유럽연합(EU) 통계청에 따르면 EU의 주택 가격은 201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14.75% 올랐다. 스위스의 UBS는 독일의 뮌헨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파리 등을 버블 또는 버블위험 지역으로 최근 분류했다. 지금까지 꾸준히 올랐던 부동산 가격이 언제든 급락할 수 있다는 경고다. 컨설팅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도 금융위기 10년이 지난 뒤 앞으로 살펴봐야 할 글로벌 경제 3대 리스크 중 하나로 부동산 버블을 거론했다.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값 급등은 임대료 상승 등 사회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유입되는 투기자본에 지역주민들이 반발하자 덴마크 정부는 재개발에 따른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미켈 회아이 덴마크 위스케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이전에는 덴마크에 외국 자본이 들어와서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례가 없었는데, 금리가 낮아지면서 블랙스톤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가 많다”고 말했다.
유럽의 대표적인 부동산 과열지구인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인 에우로파비어텔 지역에서 9년째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브리타 슐레리스 씨(52)는 “최근 아파트 월세 수준이 두 배 가까이 올랐다”며 “부동산이 들썩이면서 임대료가 올라 주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했다.
돈 있는 자산가들은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멈추지 않고 있다. 독일 부동산 컨설팅 업체의 한 대표는 “부동산 가격의 10∼20%만 있으면 대출로 집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시장에 물건이 없을 정도”라며 “인터넷에 매물을 올리면 순식간에 100명 이상이 몰린다”고 말했다.
○ 최근 거품 꺼진 곳은 빈집도 속출
부동산 버블 붕괴를 가장 뼈아프게 겪었던 일본에서도 내년 도쿄 올림픽이 끝나면 가격이 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싹트고 있다. 일본의 한 금융사 관계자는 “지방에서는 이미 이온몰 등 대형 쇼핑몰들이 매물로 계속 나오고 있다”라며 “도쿄 역시 올림픽을 위한 경기장 건설 등으로 살아난 부동산 경기가 다시 가라앉으면 시장이 냉각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내다봤다.
특별취재팀
▽팀장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경제부 조은아, 도쿄·사이타마=장윤정 기자, 런던·리버풀=김형민, 프랑크푸르트=남건우, 코펜하겐·스톡홀름=김자현
▽특파원 뉴욕=박용, 파리=김윤종, 베이징=윤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