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라이트의 ‘위대한 개츠비’… 내달 21일부터 두달간 라이선스 공연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을 건가요?” 영국 런던에서 공연하고 있는 연극 ‘위대한 개츠비’에서 배우들이 1920년대 유행한 재즈곡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장면. 관객은 칵테일을 마시며 배우들과 어울려 극을 즐길 수 있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이것은 연극인가, 파티인가. 공연장에 들어선 순간, 관객들은 개츠비가 주최한 미국 대저택 무도회 속 귀빈이 된다. 오직 초청받은 이에게만 허락된다는 초호화 파티. 관객들은 재즈 선율에 맞춰 소설 ‘위대한 개츠비’ 등장인물과 춤을 춘다. 배우와 4층짜리 극장 건물을 같이 돌아다니고 대화도 나눈다. 이쯤 되면 공연이라기보단 한바탕 축제에 가깝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에선 금주법을 시행하지만, 비밀(?)스럽게 가벼운 술도 허락된다.
전통적 관극(觀劇)에 반기를 든 연극 ‘위대한 개츠비’가 다음 달 21일 서울을 찾는다. 영어 제목이 원작의 ‘The Great Gatsby’가 아니라 ‘Immersive Gatsby’인 대목은 이 연극의 지향점을 분명히 한다. 14일 서울 중구 그레뱅뮤지엄에서 만난 알렉산더 라이트 총연출(45)은 “개츠비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을 건가요?”라며 웃음 지었다.
이 작품은 라이트가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다 우연히 탄생했다. 영문학을 전공한 뒤 연출과 PD, 극작가, 작곡가로 활동하던 그는 어느 날 술을 마시다 “지금 있는 3층짜리 펍이 곧 폐업할 것”이란 얘길 들었다. 어차피 문 닫을 곳이라면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평소 도전하기 힘든 실험극을 떠올렸다. 술과 흥겨움이 넘치는 펍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극의 메인 테마는 고전 ‘위대한 개츠비’를 택했다.
“곧 망할 가게라 건물을 공짜로 쓸 수 있었던 덕분이죠, 하하. 작업에 착수한 뒤 우리가 내린 결론은 객석에 가만히 앉아 박수만 치는 전통적인 공연 관람은 ‘진짜’ 소통하는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친구와 대화할 때 가만히 듣고만 있나요?”
알렉산더 라이트 총연출은 “수줍음이 많은 관객도 배우들 제안에 ‘No’라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전혀 관람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통적 공연을 보지 않는 관객들도 친구들과 놀러 나가듯 제 공연을 찾길 바란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공연장을 옮길 때마다 극은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됩니다. 서울 공연장은 4층 구조에 다양한 공간이 있어 활용도가 높아요. 통로는 원형 구조라 관객이 돌아다녀도 결국 한곳에 쉽게 모이는 특성이 있죠. 파티에 ‘딱’입니다.”
라이트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공연도 관객에게 ‘정장 드레스 코드’를 권할 방침이다. 다른 나라 공연도 일부 관광객을 제외하면 90% 이상이 구두와 정장을 제대로 갖춰 입고 온단다. 그는 “관객과 배우 모두가 같은 시공간 속으로 떠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며 “집에서 옷을 갖춰 입고 나온 순간부터 관객은 이미 극의 일부가 되는 여정을 시작한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말끝을 흐리던 라이트는, 결국 한마디 덧붙였다.
“위대한 개츠비는 전통적 공연장의 권위적인 행동수칙이나 격식을 극복하려는 작품이죠. 그런데 정작 제 공연에서 드레스 코드를 요구할 줄은 몰랐네요, 하하.”
12월 21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서울 중구 그레뱅뮤지엄. 전석 7만7000원. 17세 이상.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