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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몰랐어, 미안해” 상담이 끊은 학대 악순환

입력 | 2019-11-19 03:00:00

생활고로 아들 폭행하던 남성
아동보호기관서 4개월간 교육… 잘못 깨닫고 학대 굴레서 벗어나
“전문기관상담, 재학대율 절반으로… 교육 의무화위해 인프라 늘려야”




“아빠도 반성했어. 너무 미안해….”

연단에 오른 김한수(가명·41) 씨가 말을 끝맺지 못하고 흐느꼈다. 김 씨는 아들 민수(가명·8)에게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중이었다. 민수가 고개를 들어 아빠와 눈을 맞췄다. 김 씨 부자는 학대 부모와 피해 아동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2017년 9월의 일이다.

김 씨는 같은 해 9월 ‘아동 학대’ 판정을 받았다. 술에 취한 김 씨는 ‘함께 죽자’고 소리를 지르면서 민수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고 김 씨는 술만 마시면 민수를 때렸다는 사실이 경찰 조사로 드러났다. 김 씨가 민수를 때리기 시작한 건 2013년 아내와 이혼하면서부터다. 혼자 키우게 된 두 살배기 아들은 매일 밤 동네가 떠나갈 듯 울었다. 김 씨는 낮엔 일하고 밤엔 아이를 달래는 일이 반복됐다. 가전제품 수리공인 김 씨의 일감도 그즈음 줄었다. 생활고와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는 아들한테로 향했다.

김 씨 부자는 4개월에 걸쳐 상담과 교육을 받았다. ‘굿네이버스’가 2015년 개발해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보급한 ‘아동보호 통합지원 전문서비스’였다. 상담원은 ‘양육기술교육’ 과정을 통해 올바른 양육법과 학대 행위의 범위 등에 대해 알려줬다. “‘죽고 싶다’며 아이에게 신세 한탄을 하는 것도 정서 학대에 해당한다”는 상담원의 말에 김 씨는 “몰랐다”며 고개를 떨궜다.

김 씨는 지역 공공기관의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김 씨 부자의 사연을 시와 구에 알린 것이다. 초등학생인 민수는 학교를 마치고 김 씨가 퇴근할 때까지 지역 아동보호센터에서 지낸다. 부자는 시와 구에서 지속적으로 상담과 교육을 받게 됐다. 석 달간 보호시설에 머물던 민수가 김 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건 2017년 12월이었다. 그리고 2년 가까이 지나도록 민수에 대한 학대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가 2016년 4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아동보호 통합지원 전문서비스’를 받은 가정의 아동 331명을 조사한 결과 이 가운데 재학대를 당한 아동은 13명(3.9%)이었다. 같은 기간 전문 서비스를 받지 않은 가정의 아동 314명 중에는 26명(8.3%)이 재학대를 당했다.

하지만 재학대의 위험이 있더라도 가해 부모가 원치 않으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이런 교육·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입장에선 학대 판정을 받은 가정을 추적 조사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재학대 위험이 큰 학대 행위자가 상담과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하려면 전문 서비스의 확대가 필요하다”며 “그러려면 아동보호전문기관 추가 설치와 관련 인력 충원 등 인프라 확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 27곳의 상담원은 한 달에 평균 64건의 아동학대 사례를 관리하고 있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