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해 “국제법 위반”이라던 기존 입장을 번복해 파장이 일고 있다.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민간인 정착촌을 둘러싼 법적 논쟁의 모든 측면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정착촌 그 자체는 국제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민간인 정착촌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부르는 건 더 이상 효력이 없다. 그렇게 해선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 골란고원 등지를 점령하면서 이곳을 자국 영토로 만들기 위해 민간인을 대거 이주시켜 정착촌을 조성했다.
미 정부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78년 국무부가 내놓은 유권해석에 따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세운 정착촌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단해왔다. ‘전시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 협약’(제4협약)은 점령국 국민의 피점령지 이주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2016년 결의안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자치령 내 정착촌 건설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정했었다.
이와 관련 로이터는 폼페이오 장관의 이날 발언에 대해 “미 정부가 지난 40여년간 유지해온 이스라엘 정착촌 문제에 대한 외교적 입장을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미 CNN 방송 등 현지 언론들은 폼페이오 장관의 이스라엘 정착촌 발언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내년 재선 도전을 앞두고 주요 지지 기반인 ‘친(親)이스라엘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들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도 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폼페이오 장관의 이날 정착촌 발언이 알려지자 “역사적 과오를 바로잡는 것”이라며 환영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집권 리쿠드당은 지난 9월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했으나 단독 과반 의석 획득엔 실패, 현재 다른 정파와의 연립정부 구성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연정 구성 마감시한(11월20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이날까지도 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다.
이와 관련 AFP는 폼페이오 장관의 이날 발언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폼페이오 장관은 자신의 이날 발언에 대해 “이스라엘 등의 국내 정치상황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정착촌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미 정부는 특정 결과를 강요하려는 게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교장관도 “미국의 정책변경은 안보리 결의와 국제법 위반으로서 팔레스타인 평화협상 재개 전망을 위태롭게 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런 가운데 예루살렘 주재 미 대사관은 이날 폼페이오 장관의 이스라엘 정착촌 발언 뒤 “국무장관의 발표에 반대하는 세력이 미 정부 시설이나 민간인을 공격 목표로 삼으려 할 수도 있다”며 자국민들에게 요르단강 서안 및 예루살렘·가자지구에 대한 여행 경보를 발령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