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 News1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지 이틀 만에 더불어민주당에서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운동권 그룹 용퇴론이 공개적으로 터져 나왔다. 86그룹이자 불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용퇴론의 발원지라는 점에서 그의 말에 힘이 실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의원은 이날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86세대가 정치적 세대로 보면 다른 어떤 세대 못지않게 성과를 거뒀다. 그러면 이제 마침표를 찍을 때 된 것”이라며 “지난 촛불과 탄핵이 ‘86세대가 이제는 물러날 때 됐다, 우리가 할 만큼 했다. 이 정도 일을 했으니 우리는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물러나도 된다’는 기점”이라고 했다. 1987년 항쟁을 이끌었던 86그룹이 2000년대부터 정치권에 유입돼 2016, 2017년 촛불 혁명과 탄핵 사태를 이끈 점은 높게 평가하지만, 후배 세대에 그 역할을 물려줘야한다는 의미다. 그는 “기득권화된 86세대가 사회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한 2030세대 청년층에게 답을 주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30세대가 직접 그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정치권이 길을 터줘야 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86세대가 새로운 세대가 들어올 수 있는 산파 역할을 해 준다면 그 윗세대 중에도 자발적으로 물러나실 분들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86세대의 자발적인 용퇴가 중진 의원들의 불출마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 의원은 “이제 갓 국회에 들어온 초선이나 재선을 저는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용퇴 대상이 3선 이상 중진임을 명확히 했다. 그는 “무조건 주홍글씨를 붙여서 나가라는 게 아니다”라며 “86그룹 스스로 각자 진퇴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언급한 민주당 86그룹에는 이인영 원내대표를 포함해 송영길 안민석 김태년 우상호 윤호중 조정식 최재성 의원(선수 및 가나다 순)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86그룹 의원들은 기득권화 및 세대교체 대상으로 분류됐다는 데 여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다는 분위기다. 정치 역량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나이에 무조건 물러나라는 건 오히려 비합리적이라는 말도 들린다.
박홍근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86그룹은) 들어온 지는 20년 됐는데 실무 참모 역할을 했던 것 아닌가. 당 대표를 했나, 대통령이 됐나, 서울시장이 됐나”라고 반문하며 “실제 이 나라 정치에서 책임지고 일을 해볼 기회가 있었느냐. 윗세대 선배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 주역이 돼 일해 본 경험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세대는 안 된다며 선거 앞두고 한바탕의 제사상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임종석 전 실장에 대해 “자기는 정권의 2인자인 대통령비서실장까지 했으니 은퇴한다지만 대부분 86그룹 정치인들은 여전히 도전 중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또 다른 86그룹 의원은 “86세대는 생물학적으로 50, 60대 나이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고 어떤 집단보다 개혁적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집단”이라며 “통일과 사회적 약자 대변 등 아직 역사에 역할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도 “책임질게 있다면 책임져야 한다”면서도 “각자 스스로 판단해야 될 것이지 용퇴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