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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17만t 없앴더니 12만t 우후죽순… 앞이 캄캄한 불법 ‘쓰레기산’

입력 | 2019-11-21 03:00:00

무단투기 폐기물에 전국이 몸살




경기 포천시 화현면의 한 야산에 불법 투기된 쓰레기가 3m 높이로 쌓여 있다. 재활용쓰레기 처리업자가 2017년 8월 무단으로 갖다 버린 쓰레기가 2년 넘게 방치돼 있는 것이다. 포천=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20일 경기 포천시 일동면의 한 야산. 바람이 불자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났다. 냄새를 따라가 보니 울긋불긋한 색깔의 더미가 보였다. 찢어진 옷감과 플라스틱 병, 비료 포대가 한데 엉켜 있었다. 높이 3m를 훌쩍 넘는 ‘쓰레기 더미’ 5개가 솟아 있었다. 쓰레기 더미를 발로 눌렀더니 날파리 수십 마리가 날아올랐다.

이곳은 쓰레기 매립지나 소각장이 아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사유지에 쓰레기를 몰래 갖다 버린 것이다. 이곳의 ‘쓰레기산’은 올해 1월 발견됐다. 시는 곧바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쓰레기를 누가 버렸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이곳에 쌓인 쓰레기 1797t을 모두 소각하려면 5억 원이 넘게 든다. 시는 공장을 운영하는 업주가 소각 비용을 치르지 않기 위해 쓰레기를 몰래 버렸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렇게 무단 투기된 폐기물이 산처럼 쌓인 이른바 ‘쓰레기산’이 전국 곳곳에서 계속 생겨나고 있다. 올해 4월 정부는 “쓰레기산을 올해 안에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정부가 예산을 들여 쓰레기를 치우면 다른 곳에서 새로운 쓰레기 더미가 만들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올 10월 14일까지 정부는 전국에 무단 투기된 폐기물 31만402t 가운데 17만755t을 처리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11만9296t의 불법 폐기물 더미가 새로 쌓였다. 불법 투기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490억 원가량의 예산을 썼는데도 불법 투기 폐기물 총량은 고작 5만 t가량 줄어드는 데 그친 것이다. 환경부가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실에 제출한 ‘방치·불법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 자료에 담긴 내용이다.

문제는 한 번 생겨난 불법 폐기물 더미를 치우는 일이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시나 구는 쓰레기를 버린 업자를 찾아내 “치우라”며 행정처분을 하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고발할 수 있다. 그런데 업자가 처벌을 받고도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시나 구가 예산을 들여 쓰레기를 치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쓰레기를 불법 투기한 사업자에게서 쓰레기 처리 비용을 받아내기는 어렵다.

한 번 생긴 쓰레기산이 몇 년째 방치되는 일도 적지 않다. 경기 양주시 남면 일반산업단지의 한 공장 앞에 솟아난 5260t의 쓰레기산은 2014년 시에 발견됐지만 6년째 방치돼 있다. 쓰레기를 버린 업자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하지만 쓰레기 처리 비용 15억여 원을 내지 않고 있다. 시는 그동안 이 업자에게 ‘쓰레기를 치우라’는 내용의 계고장만 4차례 보냈다.

이곳 쓰레기 더미 인근의 주민들은 ‘파리 떼’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쓰레기 더미로부터 약 100m 떨어진 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문모 씨(30·여)는 “오늘(11월 14일) 하루에만 파리 40마리를 잡았다”며 “식당 문을 열면 종일 파리를 쫓는 게 일이다”라고 했다. 쓰레기 더미로부터 불과 50m 거리의 공장에서 일하는 박모 씨(48)는 “시에 민원을 수없이 넣었지만 그때마다 방역차량을 보내주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양주시는 “조만간 예산을 들여 쓰레기 더미를 처리할 예정”이라고 했다.

경기 포천시 화현면 운악산 자락에 쌓인 6134t 분량의 쓰레기 더미는 2017년 12월 발견된 직후보다 쓰레기 양이 3배 가까이로 늘었다. 지역 주민은 쓰레기 더미 하나를 발견해 시에 알렸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쓰레기 봉우리는 3개가 됐다. 누군가가 쓰레기를 계속 가져다 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t당 28만 원에 이르는 쓰레기 소각 비용을 낮춰야만 쓰레기산이 늘어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정부 예산을 들여 쓰레기 더미를 치우는 건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지금도 쓰레기 소각장 가동률이 110%로 포화 상태라서 처리 비용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며 “업자들이 쓰레기를 불법 폐기하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소각장을 늘려 처리 비용을 낮추는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