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복지를 넘어 공간복지로] <2>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더 할런’
1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더 할런의 푸드코트인 푸드할런에서 시민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푸드할런에는 파스타 가게, 아시아 음식점 등 20개 이상의 식당이 모여 있다. 더 할런은 산업유산으로 지정된 옛 트램 차고지로 2015년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 문화복합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암스테르담=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더 할런은 1901∼1928년 단계적으로 완공돼 1996년까지 트램 차고지로 쓰이던 대표적인 산업시설이다. 건물 바닥에는 여전히 선로가 남아 있다. 건물은 길게 여러 동이 연이어 붙어 있는 형태다. 암스테르담 시청이 1990년대 트램 차고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이곳은 빈 공간으로 남게 됐다. 당시 차고지 소유주인 시립운송회사(GVB) 등은 건물을 완전히 철거한 뒤 새로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차고지가 암스테르담시의 산업유산으로 지정돼 이런 방식의 개발은 어렵게 됐다.
차고지 소유권을 넘겨받은 관할 구청은 건물의 용도를 정하기 위해 1997∼2006년 다양한 실험을 했다. 스타트업과 예술가, 디자이너 등에게 공간을 빌려주기도 했고 암스테르담 대중교통박물관이 이곳에 입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박물관이 이전한 뒤 옛 차고지는 또 다시 빈 공간으로 남았다. 2012년까지 일부 저소득층 시민이 불법 점거해 거주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건축가 안드레 판 스티흐트 씨(60)를 영입해 2010년 차고지 리모델링을 추진할 비영리단체 ‘TROM(트램차고지개발회사)’을 설립했다. 여기에는 건축가, 주민, 상인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차고지 시설을 고치고 공공시설을 다수 입주시키는 방안을 구상했다. 비용은 입주자 투자, 은행 대출, 일부 시설 매각, 자체 조달 등으로 마련했다. 마침 산업유산 보전 시민단체들이 민간 기업이 개발에 참여하면 산업유산이 파괴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하며 힘을 보탰다. 차고지를 개발하려던 관할 구청은 주민 의견이 반영된 TROM의 계획안을 낙점하고 TROM에 50년간 부지 사용권을 부여했다. 옛 트램 차고지는 리모델링을 거쳐 2015년 초 ‘더 할런’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주 출입구를 통해 더 할런에 들어가면 바닥 중앙 선로를 기준으로 양쪽에 도서관, 식당, 영화관, 전시관, 상점 등이 보인다. 주변에선 사진전 등 다양한 전시회가 열린다. 호텔, 탁아소 등도 별도 건물에 마련돼 있다. 지하에는 면적 6000m²의 대형 주차장도 설치됐다.
낮에는 도서관 이용자가 많은 편이고 퇴근시간인 오후 4시 무렵부터 영화관과 음식점을 찾는 방문객이 늘어난다. 학생 톰 판 벤덜 씨(20)는 “도서관 내부에 카페가 있다. 인터넷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사흘에 한 번꼴로 찾는다”며 “카페가 조용해서 학교 과제를 하기에 좋다”고 말했다.
일부 상점은 알코올중독자나 마약중독자 등을 채용해 다시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 사회적 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더 할런은 이런 상점에는 임대료를 절반만 받는다. 상업시설과 사회적인 공간이 공존하는 셈이다. 더 할런 관계자는 “더 할런의 임대료는 암스테르담의 평균 임대료보다 30% 저렴하다. 다양한 계층이 섞일 수 있도록 입주 상점을 선별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할런은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댄스교실 등 주민 문화 프로그램과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모두 무료다. 토요일에는 예비 창업 청년과 예술인들이 책이나 예술품 등을 판매할 수 있는 빈티지 마켓 공간을 제공한다.
암스테르담=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