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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1유로에 판 로테르담 ‘발리스블록’, 다양한 계층 어우러진 공간으로 재탄생

입력 | 2019-11-21 03:00:00

[주거복지를 넘어 공간복지로]40가구 참여해 낙후된 공간 개조
마약거래상-노숙인 무법천지서 살기 좋고 쾌적한 건물로 탈바꿈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공동주택 ‘발리스블록’. 발리스블록은 입주민들이 스스로 리모델링을 한 뒤 저소득층, 전문직 등 다양한 계층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으로 바뀌었다. 로테르담=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단돈 1유로(약 1300원)에 집을 팝니다.”

2004년 네덜란드 건축가 이네커 휠스호프 씨(65·여)와 프란스 판휠턴 씨(54)는 지방정부가 낡고 방치된 주택을 사들이면 입주 희망자들이 직접 수리하고 거주하는 방법을 구상했다. 당시 로테르담시는 낙후 지역의 거주환경을 개선하려고 노후 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뒤 다시 민간에 매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막대한 예산만 들어갈 뿐 별다른 효과를 내지는 못했다.

리모델링 비용만 해도 상당했다. 로테르담시는 이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건물 매입 비용을 부담해도 리모델링 비용 등이 들어가지 않고 낙후 지역의 거주환경을 개선한다는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휠스호프 씨와 휠턴 씨는 이미 시가 매입했지만 사실상 방치됐던 스팡언 지역의 공동주택 ‘발리스블록’을 찾아냈다. 저소득층 지역에 위치한 이 건물은 당시 마약거래상과 마약중독자, 노숙인 등이 살던 곳으로 70%가 비어 있었다. 비가 새는 곳도 적지 않았고 곳곳에 비둘기 배설물이 한 뼘 이상 쌓여 있었다. 이들은 사실상 시에서 건물을 넘겨받아 주택 1채를 1유로씩 받고 팔기로 했다. 휠스호프 씨는 “워낙 낡은 건물이라 리모델링 비용이 비슷한 수준의 주택을 하나 매입하는 비용과 맞먹을 정도였다. 상징적인 금액인 1유로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 대신 까다로운 입주 조건을 내걸었다. 1년 이내에 리모델링 공사를 마쳐야 하고 이를 어기면 벌금 2만5000유로(약 3200만 원)를 내야 했다. 의무 거주기간이 2년 이상이라는 단서 조항도 달았다. 그런데도 사실상 공짜로 집을 구입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전국에서 400명 이상이 발리스블록을 찾았다. 하지만 건물이 매우 낡은 것을 확인한 뒤 상당수는 실망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결국 발리스블록에는 기존 4가구와 신규 36가구 등 모두 40가구가 집을 수리해 살기로 했다.

입주자들은 저소득층부터 건축가, 교사 등 전문직 종사자까지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됐다. 자연스럽게 여러 계층이 함께 섞여 거주한다. 건축가인 휠스호프 씨는 리모델링 노하우를 전수하며 저렴한 가격으로 리모델링을 마칠 수 있도록 입주자들을 도왔다. 입주자들은 정원 수목의 종류, 공동창고 크기 등을 의논해 정했다. 데이터분석기관인 ABF리서치에 따르면 스팡언의 안전지수(10점 만점)는 2005년 3점에서 2015년 9점으로 올랐다.

입주자 라우라 베이버르 씨(55·여)는 “직접 리모델링에 참여했고 입주 이후에도 이웃과 함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발리스블록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우리 마을’이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입주 희망자들이 직접 집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에 ‘169 클뤼스하위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휠스호프 씨와 휠턴 씨가 이 프로젝트를 확산시켜 나갔다. 현재 500여 가구가 169 클뤼스하위전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택을 개선했다.

로테르담=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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