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기 여주 블루헤런CC에서 열린 제20회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동반 플레이를 펼친 고진영(왼쪽)과 장하나가 2번홀 그린을 살피고 있다. KLPGA 제공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그런데 성공했더라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무의미하다. 장하나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2017년 ‘꿈의 무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카드를 자진 반납하고 귀국해 가족의 품에 안겼다. 당시 장하나는 LPGA투어 통산 4승을 거두며 상금랭킹 11위, 세계랭킹 10위를 달리고 있었다. 잘나가는 선수였다. 하지만 겉만 그랬고 속은 허전했다.
“우승의 기쁨은 잠시였다. 시상식을 마친 뒤 텅 빈 호텔 방에 돌아오면 공허함이 몰려왔다. 진정한 행복이 뭘까 수없이 자문했다.” 장하나는 ‘LPGA투어 진출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동료 선후배와 팬들에게 던졌다.
‘우승한다면 내년에 LPGA투어로 직행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만약 우승해도 당장 갈 생각은 없다”, “해외투어는 외롭고 힘들다.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전에 국내에서 열린 LPGA투어에서 우승(Q스쿨 면제)해 직행 티켓으로 진출했다가 좌절한 신데렐라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은 듯하다.
미국투어 생활은 녹록지 않다.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은 강행군이다. 매주 비행기 탑승 수속과 짐 부치고 찾는 것도 고역이다.
LPGA투어에서 성공하려면 실력은 기본이다. 투어 경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메인 스폰서 확보가 관건이다. 벌어들일 상금으로 경비를 조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 불안한 상태에서는 경기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기에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이는 경험자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언어 장벽과 향수병, 음식 등 현지 적응도 중요하다.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서 뛰다 LPGA투어에 직행한 역대 5명의 신데렐라 중 한 선수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 첫해는 그럭저럭 성적을 냈다. 오히려 영어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두 번째 시즌을 망쳤다”고 밝혔다. 언뜻 이해가 안 되는 ‘웃픈’ 사연이다. ‘모르는 게 약, 아는 게 병’인 경우였다.
내수 시장이 탄탄하면 수출에 목맬 필요는 없다. 프로골프도 마찬가지다. 일본 남녀 프로골프 선수는 해외 진출을 꺼린 지 이미 오래다. 자국 투어 활성화로 돈벌이나 삶의 질 측면에서 굳이 외국을 떠돌 이유가 없어서다.
하지만 한국은 여건이 다르다. 우리나라 경제의 견인차가 수출이듯,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성장은 코리아 군단이 해외에서 거둔 눈부신 성과가 시너지 효과를 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내 골프팬들의 눈높이는 이미 눈썹 위에 올라가 있다. LPGA투어 준우승 정도는 이제 성에 차지 않는다.
만약 너도나도 해외투어 도전을 기피해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안주한다면 한국 선수가 LPGA투어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그때도 KLPGA투어가 올 시즌 규모(29개 대회, 총상금 226억 원)와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5년 연속 휩쓴 LPGA투어 한국 선수 신인왕 계보(김세영-전인지-박성현-고진영-이정은)는 내년에는 이어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세계랭킹에 따라 여자골프에 최다 4명이 출전하는 것도 2020년 도쿄 올림픽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내수와 수출의 균형 발전은 한국 여자골프에도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그래야 세계 최강의 자리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