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팜, 독자 신약 美 시판 제약사들 복제약 시장 뛰어들때 바이오사업 원천기술 확보 나서 11년전 첫 뇌전증 치료제 좌절 딛고 분사시켜 8년간 5000억 집중투자 FDA에 허가 신청 자료만 230만쪽… “신약 엑스코프리 年매출 1조 기대”
2016년 6월 SK바이오팜을 찾아 신약 개발 관련 설명을 듣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 SK그룹 제공
2002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글로벌 신약 개발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재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당시 국내 대표 제약사들조차 신약 개발보다는 실패 확률이 낮은 복제약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약은 개발에 10년 이상 걸리고 수천억 원의 투자비를 쏟아부어도 성공 가능성이 낮아 경험 많은 글로벌 기업조차 신중히 접근하는 분야다. 국내 기업들은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해도 자체 개발에 나서기보다 글로벌 제약사에 후보 물질을 파는 방식을 택했다.
국내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이 ‘한국의 신약 주권을 향한 도전’에 나섰다는 의미는 컸다. 다만 단기 재무 성과에 목마른 기업이 신약 개발에 얼마나 끈질기게 매달릴 수 있을지에는 의문이 많았다”고 했다. SK가 “최 회장의 뚝심과 장기적인 투자 철학이 없었다면 SK바이오팜이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데는 이 같은 이유가 있었다. SK그룹 관계자는 “2007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에도 신약 개발 조직을 지주회사인 SK㈜의 100% 자회사로 둬 투자와 연구를 지속하게 한 것도 최 회장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실제 5000∼1만 개의 후보 물질 중 1, 2개만이 신약으로 개발될 정도로 신약 개발은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높은 도전이다. 이번 엑스코프리 개발도 2001년 기초연구를 시작해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임상시험과 인허가 과정을 거쳤다. 후보 물질을 개발하기 위해 합성한 화합물만 2000개 이상, FDA에 신약 판매 허가를 신청하기 위해 작성한 자료만 230여만 쪽에 달한다. 2017년 3월부터 SK바이오팜 대표직을 맡은 조정우 SK바이오팜 사장도 엑스코프리의 개발부터 허가까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전 과정을 지휘했다.
SK는 뼈아픈 실패의 경험도 수차례 맛봤다. 첫 뇌전증 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는 임상 1상 완료 후 해외로 기술 수출까지 했지만 2008년 출시를 앞두고 FDA 승인이 좌절됐다. 하지만 SK는 연구개발(R&D) 조직을 더욱 강화하며 신약 개발에 힘을 쏟았다. 중추신경계 질환 신약을 개발해온 SK 바이오·제약사업 부문을 2011년 SK바이오팜으로 분사시킨 것도 R&D를 더 집중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분사 이후 SK바이오팜은 지난해까지 8년 동안 R&D 비용으로 약 5000억 원을 투자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매년 약 2만 명이 뇌전증 진단을 받고 있다. 뇌전증 환자의 약 60%는 뇌전증 치료제를 복용해도 여전히 발작이 계속된다. 엑스코프리의 임상시험 진행에 참여한 신경학 교수인 마이클 스펄링 박사는 “일부 환자의 경우 엑스코프리를 통해 발작이 완전히 없어지는 등 매우 고무적인 결과도 나왔다”며 “엑스코프리 승인으로 의사들은 부분 발작이 계속되는 환자들에게 효과적인 치료요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