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전기요금 인상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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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이 지난해 7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 글에서 콩은 전기 생산에 드는 연료, 두부는 전기요금을 빗댄 것이다. 콩값이 오르면 두부값이 오르는 것처럼 연료비가 오르면 전기료도 올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 정부 들어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줄이고 생산비용이 더 드는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강조하고 있다. 김 사장의 글은 전기요금을 올릴 필요가 있지만 여론을 의식해 섣불리 요금체계에 손을 대지 못하는 현실을 잘 보여준 것이었다.
○ 그냥 두기도, 올리기도 힘든 ‘전기료 딜레마’
반면 정치권과 정부는 전기요금을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할 수 없는 처지다. 서민 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에어컨을 틀면서 한 달 뒤 날아올 전기요금 고지서가 ‘폭탄’이 될까 봐 전전긍긍했던 이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전기요금은 그냥 내버려두면 기업과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셈이고 전기료를 손대면 여론의 질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 여름 ‘전기료 폭탄’ 논란 이후 정부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민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이 TF가 올 6월 매년 여름(6, 7월) 누진제 구간을 완화해 소비자의 전기료 부담을 덜어주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이에 한전은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끼치는 방안이라며 이사회가 배임죄에 걸리지 않도록 전기료 인상 방안을 모색하게 됐다. 한전은 당장 28일로 다가온 이사회에서 전기요금 특례할인 종료와 산업용 경부하요금 조정, 필수사용공제 폐지 등 사실상의 인상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치적으로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비인기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정부로선 딜레마에 빠져 있다.
○ 전기요금 인상 뇌관 건드릴 28일 이사회
올해 말 종료되는 전기요금 특례할인제도가 연장되지 않으면 내년부터는 전기차 충전용 전기요금은 현재의 2, 3배로 오른다. 지금은 전기차를 충전할 때 드는 전기요금 중 한전이 기본요금은 면제하고 사용요금의 절반은 할인한다.
한전이 전기요금 인상 이유로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전기요금이 너무 싸서 에너지 낭비가 심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농작물이 자라는 온실 온도를 높일 때 연탄이나 석유 등 난방연료를 쓰기보다 값싼 전기로 작동하는 온풍기 등을 쓰는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은 최근 영업적자로 허덕이는 한전의 실적을 단번에 호전시킬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2016년 12조 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한전은 지난해 2080억 원 적자를 냈다. 올 3분기(7∼9월)에는 1조2392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올해 전체로는 지난해에 이어 적자를 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전기요금 특례할인에만 1조1434억 원을 쓴 한전으로서는 요금할인 폐지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다.
○ 탈원전 논쟁과 연결
전기요금이 오르면 탈원전 때문에 요금을 인상한다는 야당과 보수층의 공격이 거세질 것이라는 점도 정부로선 부담스럽다. 한전의 실적에는 국제유가, 환율, 원전가동률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한전은 “국제유가 상승이 실적 하락의 주요 원인”이라면서 “환율이 오르면 실적이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원전을 더 많이 돌리면 실적이 호전된다는 점은 한전도 인정한다. 한전은 “원전 가동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1900억 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2016년 평균 79.7%였던 원전 가동률은 2017년 71.2%, 2018년 65.9%로 하락했다. 다만 한전과 정부는 “원전 가동률이 떨어진 것은 원전의 안전을 위한 예방정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안전을 위해 원전 가동을 줄였을 뿐 탈원전 정책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탈원전에 반대하는 이들은 에너지 전환 정책이 결국 에너지 생산비용을 높여 전기요금이 오를 것이라고 본다. 올 6월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에교협)는 ‘정치와 탈원전’ 토론회에서 “정부가 발표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에너지 비중을 맞추다 보면 전기요금 인상을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탈원전으로 원전 가동률은 65% 수준으로 떨어졌고 액화천연가스(LNG) 화력의 가동률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LNG 국제 가격이 치솟으면서 지난해 에너지 수입액은 2년 전보다 87% 늘어난 12조7000억 원”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요금 인상 폭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정부는 2018년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전기요금이 오르더라도 2030년까지 10.9%가 올라 연평균 인상률이 1.3%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4인 가구의 한 달 전기요금이 720원 늘어날 뿐이라는 것이다.
반면 실제 인상률은 정부 추산보다 훨씬 높아진다는 지적도 많다. 이달 12일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발표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대로라면 2030년 전기요금은 2017년 대비 14.4∼29.2%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탈원전 논쟁이 한창이던 2017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29년 전기요금이 2016년 대비 21%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가구당 매달 1만2500원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도 2017년 대비 2030년 가구당 전기요금이 매달 1만∼1만6000원 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이 중에서 물가상승 등을 빼고 에너지 전환에 따른 인상분만 놓고 보면 5164원 정도라고 추산했다.
○ 요금 인상 속도 조절론 부각
전기요금 인상을 놓고 한전과 정부는 오랫동안 줄다리기를 해 왔다. 2006년 7월 한준호 당시 한전 사장은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너무 싸서 전기 절약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2년 7월 김중겸 당시 사장은 “주택용보다 산업용, 특히 대기업들이 사용하는 전기요금을 더 많이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2년 상반기 4조3500억 원대 영업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평균 10.7% 인상안을 내놨다가 정부와 충돌하기도 했다.
여기에 탈원전 논쟁과 내년 총선이 더해지면서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쟁은 한층 복잡해졌다. 성급하게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하기보다 신중하게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진우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추가적 비용이나 온실가스 배출권 비용 등을 전기요금에 반영할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면서도 “실제 전기요금 조정은 정치, 경제적 여건과 국민수용도 등을 고려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