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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청문회 대상 된 ‘우크라이나 스캔들’ 총정리

입력 | 2019-11-23 03:00:00

“정적 수사” → 비선실세 개입 → 탄핵카드 → 배신… 美정치 민낯




약소국 정상에게 원조를 빌미로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 수사를 요청한 미국 대통령, 이를 추진한 ‘비선 실세’, 이런 사실을 세상에 알린 익명의 고발자와 탄핵 카드를 들고 나온 야당, 그리고 대통령 측근의 배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 조사를 촉발한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한 편의 정치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9쪽 분량의 내부고발자 메모에서 출발한 논란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간접적 루트로 우크라이나에 군사원조와 정상회담 등을 미끼로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아들 헌터 바이든의 조사를 압박했다는 의혹이다. 미국 대통령이 자국민의 뒷조사를 외국 정부에 부탁했다는 부적절성이 탄핵 조사로 이어진 셈이다.

13일(현지 시간) 시작된 공개청문회는 21일 끝났지만 미국 내 탄핵 정국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개청문회 마지막 날이던 21일 피오나 힐 전 국가안보회의(NSC) 유럽·러시아 담당 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 등에서 주장한 우크라이나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설에 대해 “러시아가 만든 소설”이며 “모스크바(러시아 당국)에만 이득이 된다”고 비판했다.

앞서 20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비공식 우크라이나 외교채널’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고든 손들랜드 유럽연합(EU) 대사가 20일 공개청문회에서 우크라이나 원조의 ‘대가성(quid pro quo)’을 인정하며 미국 언론을 들끓게 했다. 호텔 체인을 소유한 사업가 출신 손들랜드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고액을 기부한 뒤 대사직을 얻은 ‘친공화당’ 인사. 그가 “모두가 핵심 일원이었다”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도 이 사실(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압박 지시)을 알고 있었다”고 시인한 만큼 폼페이오 장관과 펜스 부통령까지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불똥이 번지는 추세다.


○ ‘비선 실세’와 비공식 채널 3인방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8월 익명의 중앙정보국(CIA) 정보관의 내부고발에서 시작됐다. 내부고발자는 7월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통화 내용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고, 그간 관료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9쪽짜리 메모를 작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미 대선에서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가 미 민주당 선거위원회를 해킹했다고 주장했고,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아들 헌터가 2014년부터 이사로 있던 우크라이나 에너지 회사 부리스마 홀딩스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부탁했다.

이 메모에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중심으로 손들랜드 EU 대사, 커트 볼커 전 우크라이나 특사, 릭 페리 에너지장관 등 비공식 채널이 우크라이나에 바이든 전 부자에 대한 조사를 하도록 압력을 넣은 정황이 담겼다. 백악관이 그 뒤 공개한 통화 녹취록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줄리아니와 윌리엄 바 법무장관 등의 이름을 수차례 거론하며 이들이 바이든 부자 조사를 도와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부고발자의 폭로 이후 언론의 관심은 ‘비선 실세’인 줄리아니 전 시장에게 몰렸다. 미-우크라이나 간 ‘비공식 채널’ 조율을 맡은 줄리아니는 5월부터 언론에 공공연히 바이든이 우크라이나의 부리스마 부패 수사를 무마시켰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유리 루첸코 전 검찰총장 등 우크라이나 고위 관료들을 만나고 다녔다. 언론 보도와 청문회에 따르면 백악관, 국무부 관료들은 모두 그의 이런 행태를 우려했다. 특히 주우크라이나 대사직을 맡다 올해 4월 별다른 설명 없이 본국으로 소환된 마리 요바노비치 전 대사는 ‘우크라이나에 바이든 수사를 요구하라’고 독촉한 줄리아니의 지시를 거부한 뒤 해임됐다고 주장했다.

힐 전 고문 역시 21일 청문회에서 백악관 근무 당시 줄리아니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앞서 비공개 청문회에서도 자신도 모르는 일을 줄리아니가 벌이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며 “늘 TV 뉴스를 보고 알게 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올해 9월 경질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줄리아니가 TV에 나올 때면 무슨 말을 하는지 볼륨을 키웠을 정도라고 했다.


○ “나는 그를 모른다”… 트럼프의 외면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 개입 의혹을 뜻하는 ‘러시아 스캔들’을 비롯해 정치적 곤란에 처했을 때마다 트위터에 더욱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스캔들’ 역시 마찬가지. 공개청문회 첫날만 해도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청문회를 시청하지 않고 다른 업무를 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공개청문회가 진행될 때마다 트위터로 증인들에 대해 실시간 비난을 이어갔다. 청문회 시작 전 “마녀사냥” 등의 비난 트윗을 올리며 결백을 주장하고, 청문회가 시작되면 증인의 발언을 폄하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공화당 의원들의 멘트를 폭풍 리트윗하는 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지시로 우크라이나의 바이든 부자 조사를 압박했다고 말한 손들랜드 대사의 20일 청문회 중에는 “손들랜드의 변호사 4명이 모두 민주당 기부자”라는 트윗과 함께 자신에게 유리한 게시물을 리트윗하는 등 청문회 관련 트윗을 25개나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자신과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통화를 들었던 NSC 유럽담당 국장인 알렉산더 빈드먼 중령 청문회에는 리트윗 포함 40개가 넘는 트윗을 날렸다.

곤란할 땐 “모른다”고 하는 것도 또 다른 전략. 그간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에서 대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대가성이 있었다”고 시인한 손들랜드 대사에 대해 “나는 그를 잘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인해 줄리아니가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자 “루디(줄리아니)와 얘기를 안 하고 있다”며 선을 긋는 모습도 보였다. 최근 줄리아니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탄핵 위기 속에 트럼프 대통령의 희생양이 될지 불안하지 않냐’는 질문에 웃으며 “그렇지 않다. 나는 매우매우 좋은 보험에 들어놓았다”는 뼈 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 폼페이오 불똥… 장외 플레이어 볼턴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분류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펜스 부통령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백악관 주요 참모들이 대부분 우크라이나 관련 내용을 이메일 등으로 공유했으며 “모두가 핵심 일원이었다”는 손들랜드 전 대사의 증언은 폼페이오 장관이나 펜스 부통령에게 큰 타격을 줬다.

폼페이오 장관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문제의 통화를 NSC 직원과 함께 들은 바 있다. 통화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자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원조 동결과 바이든 수사를 연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원론적 대답만 내놓아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줄리아니의 우크라이나 비선 활동에 강한 반감을 표하며 대외정책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불화를 빚었던 볼턴 전 보좌관은 9월 경질돼 더 이상 백악관 직원이 아니지만 백악관의 탄핵조사 거부 명령을 이유로 의회 증언을 나서지 않고 있다. 다만 그는 변호인을 통해 의회에 전달한 서신에서 “그간 증언에 나온 여러 사건, 회의, 대화에 관여했으며 아직 증언에서 나오지 않은 회의, 대화도 많다”며 탄핵 국면을 흔들 ‘장외 플레이어’로서 자신의 가치를 과시하기도 했다.

육군 중령인 빈드먼 국장이나 요바노비치 전 대사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 속에도 ‘정파’가 아닌 ‘소신’을 강조해 언론 등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특히 구소련 이민자 출신으로 비공개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발언을 해 공화당 측으로부터 ‘러시아 스파이’라는 공격에 시달렸던 빈드먼 국장은 19일 공개청문회 첫 공식 발언에서 “아버지, 제가 지금 미국 의회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가족의 더 나은 삶을 찾아 40년 전 소비에트연방을 떠나 미국에 온 당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진실을 말하는 이상 저는 괜찮을 겁니다”라고 해 화제를 모았다.


○ 민주당 웃을까, 울까

지난 2주간의 공개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들이 제법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원에서 공화당이 주도권을 잡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어렵다는 전망이 높다.

하원 정보위원회에서 진행 중인 트럼프 탄핵 조사는 이후 사법위원회로 넘겨져 전체 투표 여부가 결정된다. 사법위원회(민주당 의원 24명, 공화당 의원 17명)에서 21명 이상이 찬성하면 전체 하원 투표가 진행되고 전체 하원에서 과반을 얻으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돼도 실제 탄핵은 상원의원 3분의 2 이상이 대통령의 유죄를 인정해야 이뤄진다. 미국 역사상 하원에서 탄핵이 가결됐던 전 대통령(빌 클린턴 1998년, 앤드루 존슨 1868년)은 모두 상원에서 무죄를 받아 예정된 임기를 끝까지 마쳤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1974년)은 하원 투표 전 자진 사임했다.

워터게이트 시절 사법위원회에 있었던 엘리자베스 홀츠먼 전 민주당 의원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탄핵 위기에 몰렸다가 사퇴한 닉슨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을 비교하며 “(둘 사이에) 많은 유사점이 있다”면서도 “공화당원들이 현직 대통령을 반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지금 당장은 내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흠집이 부각되며 타격을 주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탄핵에만 집중되는 분위기가 민주당에도 손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현재 진행 상황대로라면 상원에서 내년 1월경에야 트럼프 탄핵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탄핵 결정이 2020년으로 미뤄지는 것은 양당에 모두 불확실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트럼프 대항마’로 주목받으며 대선의 클라이맥스가 돼야 할 시기에도 ‘트럼프 축출’이란 탄핵 프레임 안에 묶여 있어야 하니, 선거에도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