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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 “사전 준비 미흡 경제공약… 기득권에 막혀 줄줄이 유턴”

입력 | 2019-11-24 10:30:00

● 방향만 옳았던 文 정부 경제·노동정책
● 대통령이 지시해도 관료들이 깔아뭉개
● 文, YS처럼 돌진하는 배짱 필요
● 지지율 ‘덫’에 걸려 단기 성과에만 매달려
● 조국 사태로 불평등 대두됐지만 사회적 논의 기회 잃어




[조영철 기자]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맞았다. 5년 단임제를 채택한 한국에서 대통령 임기 3년차에는 ‘중간평가’가 이뤄진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그동안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학계에는 신랄하게 ‘쓴소리’를 하는 학자가 많다. 지식인들의 비분강개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기 일쑤다. 뒤에서 떠드는 건 누구나 하지만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임기 2년 반 남은 살아 있는 권력을 겨냥해 직언하다 찍혀서 눈 밖에 나면 좋을 게 없다. 나이 들수록, 자리가 높아질수록, 돈이 많을수록 몸을 사린다.

○ 사회·경제정책 줄줄이 후퇴

실천하는 지식인의 표본을 보여주는 인물이 조돈문(65) 노회찬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 교수’였지만 ‘비정규직 운동’ 연구에 천착해온 인물이다. 8월 31일, 26년 6개월의 교수생활(가톨릭대 사회학과)을 마치고 정년퇴임했다. 현재는 노동운동 ‘동지’ 노회찬 전 의원을 추모하고 기리는 노회찬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공동대표,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상임대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장으로도 활동한다. 그의 이름 앞에 ‘진보적 노동 연구가’란 수식어가 붙는 까닭이다. 

조 이사장은 사회경제개혁을 위한 지식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로도 일하며 문재인 정부의 지지부진한 개혁에 경고음을 내고 있다. 지난해 7월 18일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개혁 포기를 우려하며 적극적인 개혁 정책을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문 발표를 주도한 이가 조 이사장이다. 그를 비롯한 지식인 323명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정책의 과감한 실현, 재벌체제 적폐청산 등을 요구했다. 11월 12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 그의 집무실에서 조 이사장을 만났다. 

-선언문 발표 이후 1년이 지났다. 올 들어 변한 게 있나. 

“달라진 게 없다. 정권 초기만 해도 국민에게 약속한 촛불 공약을 이행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지금은 사회·경제 분야 정책이 줄줄이 후퇴하고 있다. 유감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문 정부가 집권하면서 시종일관 강력하게 주장한 공약이 소득주도성장이다. 그런데 이걸 너무나 빨리, 쉽게 포기해버렸다. 물론 경제가 좋지는 않았다. 미·중 무역전쟁이 세계경제의 어려움을 불러오면서 ‘수출주도형 국가’인 우리나라가 큰 타격을 받았다. 더구나 한국은 이윤주도성장 전략을 추진하며 내수시장 강화를 외면해온 탓에 경제에 대한 타격이 더 컸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는 엉뚱한 처방”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왜 우리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광복 이후 바뀌지 않던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대전환이라고 본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강력히 밀고 나갔더라면 시장과 관료들에게도 정부의 뜻이 관철됐을 것이다. 그런데 일시적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논리에 가로막혀 그만 정책 추진 동력을 잃고 말았다. 사회·경제개혁의 핵심인 소득주도성장이 후퇴하면서 나머지 정책도 줄줄이 유턴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소득주도성장이야말로 진보의 경제 논리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정책인데, 아까운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안타깝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어떤 정책들이 그러한가.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은 임금을 올려서 소비를 유도해 내수를 진작시켜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데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서로 연결돼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임금 인상이 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대출 상환이나 월세, 교육비 등으로 지출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또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재정이 여유롭지 않은 탓에 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을 더 심하게 받을 수 있다. 이때 정부가 이들의 최저 이윤율을 보장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조치를 먼저 추진했어야 했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을 지휘하는 수장이 홍장표 전 경제수석에서 기획재정부 출신 윤종원 전 경제수석으로 돌연 교체되면서 기재부 관료들의 저항에 부딪혀 결국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라는 엉뚱한 처방을 내리고 말았다.” 

조 이사장은 최저임금을 인상했지만 산입 범위를 확대하는 바람에 저소득층이 혜택에서 제외됐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금 등을 포함시킴으로써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하게 됐다. 조 이사장은 “이 때문에 저소득층 노동자 사이에서는 ‘빛바랜 노동정책’이라는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정규직 전환에만 급급한 나머지 임금격차 해소 등 처우 개선은 여전히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2년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규모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적 수준에 맞먹고, 기간제뿐만 아니라 간접고용 비정규직까지 전환 대상에 포함했다는 점에서 전임 정부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환 정규직을 기존 정규직에 비해 임금 등 노동조건에서 차별 처우하는 문제점은 전임 정부들과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자회사 방식’을 정규직 전환의 한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사내하청 같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정규직 전환용 자회사는 독립 경영이 아니라 대부분 인력 공급형 구조로 모회사에 종속돼 있다. 모회사는 자회사의 노동조건 결정권을 갖지만 법적 사용자가 아니다. 자회사 노조가 실질적 책임이 있는 모회사에 직접 교섭하라고 요구해도 모회사는 뒤로 빠지려 할 수 있다. 갈등을 유보한 형태로 정책이 추진되는 셈이다.”

방향 옳았지만 정책 준비 미흡

-왜 정부가 자꾸만 타협하는 건가. 

“일각에서는 ‘사기성 공약’이었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시·지속업무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공약하고 추진한 것은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본다. 다만,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인상 정책처럼 예산 부족을 이유로 공약 이행에 협조하지 않는 각 부처 관료들의 저항에 부딪혀 타협하고 후퇴한다는 점이 문제다. 기득권 세력이 반대하고 일시적으로 부정적 효과가 발생하더라도 애초 취지에 맞게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타파하지 못하고 기획재정부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애초에 없던 타협점이 생기니까 정책의 효과가 자꾸만 상쇄된다. 정부와 관료들은 현재 대한민국 경제에 반드시 필요한 정책임에도 그 효과가 다음 정권에서 나타난다고 판단해 기피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니 대통령이 진정성을 갖고 지시해도 밑에서 정책을 깔아뭉개는 일이 생긴다.” 

-정책 추진 동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단순히 관료 사회의 저항 때문이다?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전 준비 과정이 미흡했던 게 근본적인 이유다.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야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이 과정을 쉽게 생각하고 안일하게 준비했던 게 아닌가 싶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점이나 부작용, 논란 등을 짚어보고, 대책 방안을 치밀하게 마련하지 못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물론 조기 대선으로 인수위조차 만들지 못했고 일부 장관 임명조차 진행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가 출범해야 했던 사정이 있다. 그럼에도 경제정책 준비가 상당히 미흡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에서 세 번째)이 7월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경제 성과 보고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文, 뚫고 나가는 돌파형 아닌 듯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미흡했나.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이윤율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이윤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중소기업에도 여유자금이 생겨 고용 창출이 가능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때는 재원 확보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는지 등 체계적으로 검토해야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이지 않는다. 정부가 바로 이런 점을 간과했다.” 

조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에는 강력한 돌파력과 추진력이 동반돼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하나회를 척결한 일이나 금융거래를 금융거래 당사자 실제 본인의 이름으로 하도록 금융실명제를 도입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돌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정책 추진 과정에서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고 상황을 타개하는 돌파형이 아닌 것 같다.” 

- 대통령이 여론을 의식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문 대통령과 그 주변 참모들이 ‘성공의 덫’에 걸렸다고 본다. 문 대통령의 임기 초반 지지율이 70~80%를 웃돌았다. 보수 성향이 두터운 대한민국에서 그런 지지율이 나왔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경제성장과 불평등 해소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높은 지지율이 나올 수가 있나. 지지율은 40~50% 수준을 유지하면 된다. 처음부터 너무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것이 도리어 문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게 아닌가 싶다. 지금 정부를 보면 지지율 1% 떨어질까 염려하며 여론에 연연하는 걸로 보인다. 청와대 여민관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 모니터도 마찬가지다. 경제지표를 매일 들여다보면 과감하게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단기적인 성과에만 매달리게 되지 않겠는가.”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숫자에 연연하며 단기적 성과를 내려다 보니 재벌에 협조를 구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조영철 기자]


“삼성 지배구조 건드린 건 검찰”

-문재인 정부의 경제개혁 의지가 약하다고 보는가. 

“세 바퀴 경제의 세 가지 축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다. 혁신성장은 전임 정부가 추진하던 정책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고, 소득주도성장은 현재 후퇴한 상황이다. 남은 건 공정경제뿐이다.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생계형 적합 업종을 도입하고 원·하청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이 정책의 핵심이다. 공정거래법을 통해 피해 본 기업이 실질적으로 피해를 보전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한 것은 공정거래 질서 확립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정부가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정책의 성과는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대기업과 중소기업 이윤율 격차를 기준으로 따져보면 된다. 이윤율 격차가 줄어들지 않았고, 제조업 가운데 이윤을 가장 많이 낸 ‘전자’ 부문에서 이윤율 격차가 가장 크다. 이는 정부가 공정거래 질서 확립을 위해 그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그 효과가 미흡했음을 뜻한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공정거래위원장 재직 시 재벌개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재벌개혁론자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내정한 첫 번째 장관급 인사였다. 사법개혁과 함께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는 느껴졌다. 하지만 재벌그룹 내 지배구조 문제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김상조 위원장은 공정거래 질서 확립에서 일정 정도 성과를 거뒀으나 재벌개혁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만일 삼성이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면, 정부의 경제정책이 아니라 박영수 특검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현 검찰총장) 지휘하에 진행된, 검찰의 삼성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 때문이라고 본다.” 

- 문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가 퇴보했다는 평가가 있는데….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재벌에 직접 지배구조 개선을 맡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지지율·경제수치 연연…재벌 협조 구해”

그는 “경제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 숫자에 연연하는 식으로 단기 성과를 내려고 하니 재벌의 협조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며 청와대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다고 보는가. 

“개인적으로 조국 교수가 민정수석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봤다. 법무부 장관으로 가는 건 반대했다. 조국 사태를 통해 사회 불평등 구조가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는 확인됐지만, 공정성·양극화·불평등이라는 사회적 의제를 성숙하게 논의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양대 정당과 언론이 지나치게 조국과 윤석열의 대립 구도를 만든 것이나 정부와 정치권이 검찰개혁이라는 의제를 과도하게 정치화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조 이사장은 “다만 장관 등 공직자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노동운동은 정규직 노조 중심이다. 민주노총 또한 ‘이익집단화’ ‘좌파 기득권’이란 비판을 받는데.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이익집단이다. 조합원의 이해관계에 따라야 한다. 간혹 민주노총 회의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논쟁을 하기도 하지만,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민주노총의 시각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비정규직 문제를 연대의 관점에서 진정성 있게 바라보고 실천하려고 한다. 이익집단을 넘어선 계급조직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계획은. 

“8월 말 퇴임에 맞춰 책 ‘함께 잘사는 나라 스웨덴’을 펴냈다. 사실 성 평등과 여성 노동문제도 관심을 갖고 연구해서 이번 책에 넣으려고 했는데 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앞으론 이 주제와 관련해 스웨덴은 물론 한국의 상황도 연구하고 싶고, 관련 운동에도 참여하고 싶다. 그동안 해온 삼성의 노동 문제를 정리하는 작업,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정규직 중심으로 평가하는 작업 등 연구·집필 주제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는 학자들만 읽는 글은 쓰지 않으려 한다. 대중에게 친숙한 글을 쓰고 싶다.” 

-노회찬 전 의원과 ‘동지’로 알려져 있는데. 

“진보정당 운동을 하면서 그와 인연을 맺었다. 민주노동당이 출범(2000년 1월)하기 이전인 1999년 7월부터 당의 강령 초안을 만들면서 그를 만났다. 늘 피곤하고 지쳐 보이던 그가 2004년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화려하게 입성하던 순간 활짝 웃었다. 그날 노회찬의 미소를 잊지 못한다. 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이다. 나는 그와의 술자리에서 가끔 정당 욕도 하면서 마음을 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빙긋이 웃기만 했다. 올해 처음 노회찬정치학교에서 정치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10~30대 젊은 친구들이 많이 왔다. 노회찬이 꿈꾸던 정치를 그곳에서 풀어보고 싶다.”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1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