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례 없는 변종 만든 건 전두환이라는 악마 ● 좌파라기보다는 주체사상 영향 받은 민족주의자 ● 지금도 ‘해방전후사의 인식’ 프레임으로 세상을 봐 ● 민경우 진중권 박용진 같은 사람 많아져야 ● 민주노총, 전교조야말로 위선의 극치
[이상윤 객원기자]
주대환(65)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는 2014년 ‘뉴-레프트, 대한민국사관을 약술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올해 오십(五十)에 이른 1964년생 친구 H, K, Y를 위하여’라는 부제를 달았다. ‘뉴-레프트, 대한민국사관을 약술하다’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우리는 반미친북 민족주의를 진보라고 하고, 친미반공을 보수라고 했다. 이런 대립 구도는 2030세대에는 지극히 낯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선진국에서 태어난 선진국 사람들이고 우리들 같은 후진국 사람이 아니다. 올드-레프트는 민족주의=후진국형 진보사관으로 한독당과 공산당의 시선으로 건국 전후사를 봤다. 뉴-레프트는 민주주의=선진국형 진보사관으로, 해공(신익희) 죽산(조봉암)의 시선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서술한다.”
그는 1954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마산고·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부마항쟁을 비롯한 다수 사건으로 투옥됐다. 1987년 6월 ‘살인·강간·고문 정권 타도를 위한 인천노동자투쟁위원회’를 조직해 활동했다. 1987년에는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결성했으며 ‘김철순’이라는 가명으로 혁명을 지향하는 글을 썼다. 1992년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원장, 2004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냈다.
○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변종 좌파”
그는 우남, 인촌, 죽산, 해공을 ‘건국의 아버지들’로 본다. ‘공산당에서 전향한’ 죽산, ‘임시정부계 2인자’ 해공, ‘당대의 조정자’ 인촌이 힘을 모아 건국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토지개혁을 주관하는 농림부 장관을 죽산에게 맡긴 우남 이승만, 소작농이 유상분배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유리한 조건을 설계한 죽산 조봉암, 농지개혁을 대세로 받아들여 중소 지주까지 따르게 한 인촌 김성수, 임시정부계를 떠난 해공 신익희가 번영한 대한민국의 초석을 닦았다는 주장이다.
11월 7일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에서 그를 만났다.
- 대한민국 건국과 토지개혁을 세계사에 가장 완벽한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이라는 보는 시각이 독특하다.
“굳이 우리를 좌파라고 말할 때 좌파는 평등, 천부인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건국과 토지개혁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이야말로 그 가치가 실현됐다. 6·25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으면서 잔존하던 신분 질서도 무너졌다. 좌파라면 어떻게 대한민국 건국을 긍정하지 않을 수 있나.”
그는 집권 86세대를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변종”이라고 규정한다. 변종 좌파, 후진국형 좌파라는 것이다.
1980년대 대학가 시위 모습. [동아DB]
○ “좌파가 아니라 주체사상 영향 받은 민족주의자”
“식민지 종속국에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니 하는 사상적 조류를 받아들이더라도 실제 행동은 독립운동밖에 못한다. 그게 숙명이다. 종속국의 진보라는 게 그렇다. 독립운동가들이 3·1운동 이후 공산주의로 기운 게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는 한국 독립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이 독립운동가를 지원해주지 않았다. 광복 이전 상당수 청년이 친(親)소련 노선으로 기운 까닭이다. 한국이 지금 어떤 나라인가. 일류 선진국이다. 이제는 올바른 형태의 진보를 할 조건이 됐다.”
- 민족주의와 좌파가 양립할 수 있나.
“보수 쪽에서 상대 쪽을 진보라고 부르는데 좌파도 아닌 것이 이상하게 진보라고 불린다. 변종을 만든 건 전두환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때 시민들을 죽이고 등장한 전두환을 몰아내기 위한 투쟁에서 변종이 생겨났다. 투쟁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청년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준 사람들이 있다.”
- 어떤 사람들인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쓴 사람들이다. ‘총칼을 갖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놈들이지만 사실은 별게 아니야, 친일 잔재의 후손들이야, 저놈들은’이라고 말해준 거다. 턱도 없는 헛소리인데 청년들이 딱 듣고 싶은 말이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정신적으로 믿은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 집권한 전두환에게는 정당성이란 게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청년들을 고무시켰다.”
그는 집권 좌파가 지금도 1980년대 운동권 필독서인 ‘해방전후사의 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봤다.
“보수 쪽에서 전대협, 주사파 어쩌고 하는데 그 사람들에게 ‘여보, 당신들 책임이야. 전두환을 쫓아내는 굉장히 큰 과업을 20대 초반 애들한테 맡겨놓고 너희들은 신경도 안 썼잖아’라고 말해준다.”
“마르크스는 그 사람들하고 별 상관이 없다.”
- 왜 그런가.
“주체사상이 운동권을 석권했다. 주체사상 토대가 민족주의니까 더 잘 먹힌 거다. 마르크스주의보다는 주체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 “모른다, 악성인지는”
- 실제로는 좌파가 아니라는 건가.
“그렇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 빨갱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핀트를 잘못 맞춘 것이다.”
-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더라.
“그 친구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자존심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써놓은 글들이 남아 있으니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사상 전향할 기회를 놓친 거다. 그러니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질 때, 1990년대 중후반 북한 고난의 행군 때 등이 그 친구들이 생각을 바꿀 시기였는데 기회를 놓쳤다. 자기네들도 이념 정리가 안 돼 있다. 바쁘게 그냥 살아온 거다.”
- 변종이라고 해도 악성은 아니지 않나.
“모른다, 악성인지는.”
- 집권 86세대의 전체주의 성향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파시즘과 연결해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다만 전두환과 싸우는 과정에서 익힌, 대중을 동원해 힘을 과시하며 목적을 달성하는 일에 굉장히 능하다. 훈련돼 있다. 수십, 수백만을 동원할 줄 안다.”
- 전례 없는 변종이라고 보는 이유는.
“짬뽕이다.”
- 짬뽕?
“정신세계가 굉장히 독특하다. 학자들이 그 친구들의 정신세계를 연구해야 한다고 본다.”
-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은 어떻게 보나.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기업 규모에 따른 격차를 줄이는 노력이 거의 없는데 방향이 잘못된 거 아닌가. 기득권을 안 건드리고 그대로 두면서 실현할 수 없는 얘기만 한다.”
[이상윤 객원기자]
○ “민주노총, 전교조는 위선의 극치”
- 기득권은 민주노총을 말하나
“민주노총, 대기업 노조, 특히 공무원, 공공부문. 조국만이 아니라 딱 그 또래들이 다 위선자다. 민주노총, 전교조는 위선의 극치다. 부부 교사 퇴직자 연금이 700만 원쯤 된다더라. 열심히 일하는 청년들이 얼마를 받나. 연금이나 이런 거에 혜택을 받으면서 정년 연장까지 누리려고 한다.”
-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 “민주노총, 전교조를 배신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권을 내놓을 생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런 걸 해결해야 역사에 남는 정권이 된다. 문재인 정권은 그렇게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민주노총이나 공무원·공공부문 노조, 한국노총, 이런 쪽에서 촛불시위를 해 정권을 만들어줬으니 못 거스르는 거다. 임기 2년 반이 지났는데 이제는 배신하고 싶어도 못할 것이다.”
- 사고가 1980년대에 고정돼 있다는 비판은 어떻게 보나.
“설마 그럴까 싶었는데, 자기네들의 판타지, 어떤 환상, 자기네들의 세계관에서 크게 못 벗어났다. 북한, 일본과의 관계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게 그 친구들이 자기들만의 판타지에 빠져 있어서다. 나는 그 친구들이 환상 속에 빠져 산다고 본다. 리얼리즘에 충실하지 못하다. 보수 쪽에서 ‘중국식 일당독재 국가로 만들려고 한다’는 식으로 비판하던데 그런 게 아니다. 현실적이거나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친구들이 아니다. ‘너희들이 만들려는 나라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같은 미사여구만 줄줄이 담긴 답을 내놓을 것이다.”
○ “자기네들의 판타지에 빠져 산다”
- 탈원전정책은 어떻게 봤나.
“철학의 빈곤이다. 고려 없이 성급하게 일한다. 촛불시위로 정권을 잡은 후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서 야당은 붕괴해버렸다. 견제 세력이 없었으나 그렇더라도 중대한 정책을 심사숙고하지 않았다.”
- 대통령 말 한마디로 입시 제도가 바뀐다.
“한국의 현재 입시 제도가 굉장히 좋은 것으로 안다. 그런데 왜 건드리나. 조국 딸내미 때문인 것 같은데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제도를 악용한 놈들이 나쁜 거다.”
- 최저임금은 급격하게 올릴 필요가 있었다고 보나.
“안 올리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최저임금과 연관된 게 너무나 많다. 심사숙고 없이 그런 식으로 해버리니 경제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태양광 한다고 산을 깎아내는 것도 같은 맥락의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다.”
- ‘죽창’ ‘의병’은 어떻게 봤나.
“그게 그 친구들의 정신세계다. 판타지에 빠져서 사니 그런 게 툭툭 튀어 나온다. 역대 정권도 반일 정서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걔들의 다른 점은 그게 독특한 정신세계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집단 전체가 그런 정서와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 진영 내부에서 86세대에게 잔소리를 많이 했다. 이른바 ‘86세대 비판 담론’ 원조 격인데….
“2014년 쓴 글에서 ‘올해 오십(五十)에 이른 1964년생 친구 H, K, Y를 위하여’의 H, K, Y를 처음 만난 게 1984년이다. 그즈음 나도 대학 졸업장 받으려고 복학했다. 1984년부터의 세월이라는 게 그 또래 친구들을 피할 수 없었다. 민주화 운동을 해도 그 또래 친구들과 했고, 진보정당 운동을 해도 그 또래 친구들과 했다. 뭘 하던지 걔네들이 90%였다. 다투고 논쟁하고 달랬다. 86세대와 부대끼며 살아온 삶이다. 잔소리꾼으로 살아왔는데, 그 친구들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정신세계가 독특한 데다가 무식하고 건방지다. 건방질 수밖에 없다. 전두환이라는 악마를 몰아낸 게 스물한 살, 스물두 살 때다. 그렇다 보니 자신들과 독립운동가를 동일시하는 판타지적 정신세계가 구성된 거다.”
○ “밀레니얼 세대에 희망이 있다”
- 집권했으니 바뀌지 않았을까.
“철들어야 한다. 한두 명이 아니다. 넓게 보면 수십만, 수백만이다. 세대교체가 일어나 그 친구들이 밀려나야 한다. 물론 다 똑같은 건 아니다. 변화에 조응한 친구들도 있다. 성숙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이들이 그 세대 안에서 등장해야 한다. 요즘 보니 민경우나 진중권 같은 친구들은 다른 목소리를 내더라. 박용진(민주당 의원)이라는 친구도 반응을 보이고 있다.”
- 변종 좌파가 퇴장하고 서구식 보편적 좌파가 등장해야 한다고 보는 쪽인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 나이 들면 생각이 잘 안 바뀐다. 청년들에 의해 보편적 진보가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본다.”
-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세례를 받지 않은 좌파?
“그렇다. 밀레니얼 세대는 광주의 비극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내놓는 담론이 86세대의 영혼이다. 진보 동네의 솔(Soul)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재생산돼 공급된다. 지금도 소녀상을 만든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만든다, 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회비 내는 사람만 수만 명이다.”
- 칼로 자르듯 양분할 수는 없으나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됐다. 현재의 갈등을 좌우파가 건강하게 정립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본다. 낙관한다.”
- 2014년 뉴레프트를 선언했으나 결과적으로 조직화에는 실패했다.
“그런 셈이다. 밀레니얼 세대에 기대를 건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1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