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교장관은 23일 나고야에서 만나 다음 달 말 중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양국 간 공식 정상회담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 뉴욕 회담 이래 1년 넘게 열리지 않았던 만큼 내달 회담이 성사되면 한일 갈등 해소를 위한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6시간 남기고 이뤄진 한일 간 휴전 합의는 일단 외교적 협상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양측이 모두 퇴로를 찾은 결과인 것이다. 그런 만큼 누가 이겼느니, 누가 더 양보했느니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은 유치하고 부질없는 일이다.
일본 언론에선 “일본 외교의 승리다. 퍼펙트게임이었다”는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나왔고,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며 한국이 미국 압박에 굴복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청와대는 “아베 총리 발언 보도가 사실이라면 지극히 실망스럽다. 정부 지도자로서 양심을 갖고 할 수 있는 말인지…”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대로라면 내달 정상회담이 제대로 성사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최근 한일 간에는 강제징용 해법을 두고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시한 ‘1+1+α(알파)’안, 즉 한국과 일본 기업, 양국 국민의 자발적 성금으로 기금을 만드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 해법은 정부와 정치권, 나아가 기업과 피해자를 포함한 국민적 공감대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대법원 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매각 집행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만큼 해법 찾기에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한일 양국은 눈앞의 정치적 욕심에 매달려 화해를 이룰 귀중한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국가지도자와 정치인들이 여론에 초연할 수는 없겠지만, 그 여론을 한데 모으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진정 탁월한 정치력(statesmanship)을 발휘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