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접수땐 불공정 논란”… 인기 학원들 오프라인 등록만 받아 ‘시간당 2만원’에 대신 줄서줘… 대목 맞은 업체들 알바생 구인난
줄 서기 대행업체 A사에는 요즘 이런 전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다음 달 시작되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 유명 입시학원들의 겨울강좌 등록을 위해 학생과 학부모들이 앞다퉈 줄 서기 대행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줄 서기 대행은 돈을 받고 티켓이나 제품 구매, 식당 입장을 위해 대신 줄을 서주는 알바다. 학원 신청 대행은 시간당 2만 원 정도다.
대치동 B학원은 토요일인 이달 30일 오전 9시에 번호표를 나눠주고 10시부터 선착순 등록을 받는다. A사는 이 학원에 등록하려는 학부모들로부터 전날 오후 5시부터 밤새워 줄을 서달라는 주문을 받고 있는데 줄을 설 직원이 모자랄 정도로 수요가 많다. 줄 서기 대행 알바는 보통 줄을 서고 번호표를 받은 뒤 학부모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업체 관계자는 “그날 우리 직원 전부가 B학원 앞에서 밤을 새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치동 일대에는 ‘학원 수요’가 많다 보니 등록 시즌에만 집중적으로 줄 서기 알바를 하는 ‘프리랜서’도 생겨났다. 여름방학을 앞둔 올 6월 C 씨는 B학원의 등록을 위한 줄 서기 대행을 했다. 당시 B학원이 있는 건물 입구에서 대기 줄이 100m 가까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줄 서기 대행 알바는 장시간 앉아 기다려야 하는 탓에 휴대용 방석 준비는 필수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롱패딩과 모자, 핫팩으로 중무장을 한다. C 씨는 29일에도 오후 5시부터 B학원 앞에서 대기할 계획이다. 친구 2명도 다른 고객의 부탁을 받고 함께 기다리기로 했다. 16시간을 서주고 시간당 2만 원을 받는데 이 3명 모두 예약이 다 찼다. C 씨는 29일 오전에 영어유치원(유아 대상 어학원) 등록을 위한 줄 서기도 예약돼 있다.
대치동 학원가의 ‘줄 서기 전쟁’은 등록 뒤에도 끝이 아니다. 인기 높은 이른바 ‘일타’ 강사의 강의는 매번 시작 5, 6시간 전부터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린다. 수백 명이 들어가는 대형 강의실이라 뒤쪽에 앉으면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에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수강생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때도 자녀 대신 나서는 학부모들이 많다. 대치동의 한 이름난 입시학원은 오전 7시에 강의실 입장 번호표를 배부한다. 유명 강사의 강의가 있을 때는 학부모들이 오전 2, 3시부터 줄을 서 번호표를 받고 강의실에 들어간 뒤 책상 위에 아이 이름을 써놓고 나오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는 입시학원 등록 때 줄 서기 대용으로 가방을 놓기도 했다. 이른바 ‘가방줄’이다. 그러나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면서 최근에는 대부분의 학원들이 무조건 현장에서 기다려야 등록을 받아주고 있다. 한 학부모는 “솔직히 학원이 갑질 한다는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지 않으냐”며 “아마 (대입) 정시가 확대된다면 학원 등록이 더 힘들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학부모는 “밤새워 줄 서는 게 너무 힘들지만 아이가 그 강의를 꼭 듣고 싶어 한다”며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는 생각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