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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유럽, 비과세 금융상품 혜택 늘려… 개인 자산증식 투자 도와

입력 | 2019-11-25 03:00:00

[제로 이코노미 시대 변해야 살아남는다]
<8> 선진국 금융 ‘돈 굴릴곳 만들기’ 총력




금융투자 및 재테크 팁을 공유하는 여성들의 모임 ‘긴유 조시‘의 회원들이 최근 일본개인저축계좌(NISA)와 관련한 강의를 듣고 있다. 제로금리 시대 재테크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강의 후에도 한참동안 회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도쿄=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지난달 일본 도쿄의 가야바(茅場)정에 있는 도쿄증권회관 빌딩 내 세미나실. 오후 7시가 가까워진 시간, 하나둘 모여든 20, 30대 젊은 여성들이 세미나실을 가득 채웠다. 이들은 금융투자와 관련한 강의를 듣고 개인적인 투자 팁도 공유하는 여성 직장인 모임 ‘긴유 조시(きんゆう女子)’의 회원들. 반갑게 서로의 근황을 묻던 이들은 강의가 시작되자 곧 ‘열공 모드’에 돌입했다.

이날의 강연 주제는 세제 혜택과 투자 수익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일본개인저축계좌(NISA)였다. 강사로 나선 금융청 금융·세금정책 코디네이터 이마이 씨는 “지금 같은 저금리 시기에 금융투자 수익에 부과되는 세금 20%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라며 “NISA로 투자 수익을 올리고 적극적으로 자산 형성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국민들의 보유 자산 중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은 17% 정도다. 30∼40%에 육박하는 미국, 영국 등에 비해 낮은 편이다. 저금리 시대에 충분한 수익을 내기에는 투자 성향이 너무 보수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일본 금융당국은 2014년 NISA를 만들고 개인투자자들의 적극적인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저금리 저성장 기조가 계속되는 제로이코노미 환경에서 국민들의 금융자산 증식을 돕겠다는 취지다.

○ 일본 미국 등 저금리 대응 투자상품 봇물


일본, 유럽 등 금리가 마이너스(―)이거나 0%대인 국가들은 비과세 금융상품의 혜택을 늘리고 상품 구조를 쉽게 만들어 일반투자자의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일본은 NISA 가입 대상에 제한이 없고, 이를 통해 발생하는 투자 수익에 대해 전액 비과세 혜택을 준다. 이에 따라 2015년 3월 말 879만 명이었던 NISA 가입자 수는 올해 3월 말 1283만 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투자금액도 4조4000억 엔에서 16조5000억 엔(약 179조844억 원)으로 4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영국도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중심으로 금융 세제 혜택을 정비했다. 가입자의 연령대에 따라 연간 저축 한도가 다를 뿐, 가입을 위한 소득 기준이나 세제 혜택 한도, 저축·투자기간 등에 제한이 없다.

미국에서는 2017년 QOZF(Qualified Opportunity Zone Funds)를 도입해 개인의 유동자금이 금융시장으로 재투자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예컨대 부동산 투자로 생긴 돈을 ‘기회구역(Opportunity Zones)’이라고 불리는 낙후지역에 5∼10년 투자하면 양도소득세를 10∼15% 감면해주거나, 해당 지역에 투자해서 발생한 수익에 대해서는 비과세하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낙후지역에 대한 민간 투자를 끌어들이고, 투자자들로서는 세금 혜택을 얻을 수 있어 ‘윈윈’이다.

홍콩은 올해 3∼5월 석 달간 인터넷전문은행을 8곳이나 인가하며 소비자에게 다양한 혜택을 줄 수 있는 금융상품이 나오도록 유도하고 있다. 금융권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HSBC 등 기존 대형은행들은 월 1만5000원가량의 계좌유지 수수료까지 폐지하고 있다.

○ 복잡하고 혜택도 적은 한국 금융상품


일본이나 유럽 등에 비해 한국은 아직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금융상품이 드물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시중 유동성이 연리 1%대에 불과한 예·적금이나 부동산 시장에만 몰리고 있다.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의 올해 글로벌자산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순금융자산은 2만9719유로(약 3800만 원)로 조사대상 53개국 중 20위에 그쳤다.

특히 국내 절세형 금융상품은 가입 기준이 까다롭고 혜택도 많지 않아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한국의 NISA 격인 ISA는 가입자 수가 2016년 도입 후 240만 명까지 늘었다가 최근 211만 명대로 다시 감소했다. ISA는 각종 금융상품을 한 계좌에 담아 한꺼번에 비과세 혜택을 주는 ‘만능통장’으로 주목받았지만, 실제로는 연간 납입한도가 2000만 원에 불과하고 의무가입 기간이 5년이나 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외면 받고 있다.

각종 규제로 인해 금융 신상품 개발도 더딘 편이다. 우선 파생결합펀드(DLF) 대량손실 사태로 정부가 최근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금융사들의 상품 개발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시장 규모가 2400조 원대에 이를 정도로 급격하게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는 해외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도 국내 자본시장법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금융상품에 대한 세제가 복잡하고 제각각이라 혼란스럽다는 지적도 많다. 이런 규제 때문에 국내 금융회사가 만든 금융상품이 해외 금융사에 비해 오히려 역차별 받는 일도 발생한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때그때 해외사례를 베껴 금융상품을 만들고, 세금제도도 조금씩 고치다보니 투자자에게 접근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장기적인 투자자의 자산 증식을 위해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 부동산에 쏠린 한국… 금융자산은 20% 그쳐 ▼


돈 굴릴곳 없고 ‘부동산 불패’ 맹신… 부동산 경기 꺾이면 노후자산 위태
美 70%-日 64%… 금융 비중 더 높아


한국은 금융시장에서 돈 굴릴 곳이 마땅치 않다 보니 시중 자금이 더욱 부동산 쪽으로 몰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부동산 경기가 계속 과열된다면 버블이 꺼지면서 투자자들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부터 저성장 저금리가 본격화되며 실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국내 투자자들의 부동산 쏠림 현상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봐도 심각한 편이다. 현대경제연구원과 메트라이프생명이 최근 국내 30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금융자산 대 비금융자산의 비율은 평균 20 대 80이었다. 반면 미국(70 대 30), 일본(64 대 36) 등은 오히려 금융자산 비중이 높다. 한국인의 자산이 부동산에 지나치게 많이 묶여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저금리 시대에 돈을 굴릴 다른 투자처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지만, 그동안 부동산에서 쏠쏠한 수익을 얻은 학습효과가 작용한 탓도 있다. 이는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김현섭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팀장은 “서울 강남권에서 2년 전 아파트를 산 고객 중에는 수익률이 100%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며 “반면 금융상품은 수익률에 변동성이 커서 지금도 자산가들은 목돈이 생기면 일단 부동산 투자부터 고려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위주의 재테크는 사회적 비용도 상당한 편이다. 부동자금이 계속 몰리면서 주기적으로 집값이 폭등하면 서민의 주거난이 심각해지고 각종 부동산 대책도 약효가 떨어진다. 국내 투자자들이 부동산만 바라보다 보니 최근 수천억 원대 손실을 낸 파생결합펀드(DLF)와 같은 사태가 일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가 어둡기 때문에 은행 직원의 권유만 믿다가 불완전판매를 당하거나 투자 실패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돈이 금융시장으로 가면 다른 곳에 투자가 일어나는 등 생산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부동산에 돈이 집중되는 건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은 “장기 침체기가 오면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오르기 힘들기 때문에 노후를 위해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경제부 조은아, 도쿄·사이타마=장윤정 기자, 런던·리버풀=김형민, 프랑크푸르트=남건우, 코펜하겐·스톡홀름=김자현
▽특파원 뉴욕=박용, 파리=김윤종, 베이징=윤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