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까talk]중간부터 만드는 사람들 모든 재료 만들기엔 기능-시간 부족… 초벌 재료 인터넷서 주문해 장만 와인랙-탁자 등 약간의 수고로 완성… 고품질 천체망원경까지 내 손으로 DIY붐 타고 반제품 시장 성장세
《손수 무언가를 만드는 뿌듯함을 어디 비할까. 제품을 직접 만들어 쓰며 생산자로 변하는 소비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손수 하기에는 힘든 일이 많다. 어느 정도 손질된 재료나 ‘반(半)제품’을 활용해 수고는 최소화하고 만드는 기쁨은 최대한 누리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중간부터’ 만드는 셈이다.》
미리 재단한 목재를 공방이나 인터넷에서 구해 만든 사방 탁자(왼쪽)와 거실용 탁자. 김상진 씨 제공
요즘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클릭 몇 번 하면 원하는 치수에 맞춰 재단한 목재를 배달해주기도 한다. 역시 목재로 쓰레기통, 수납장 등을 만들어 쓰는 송인석 씨(40)는 “원목부터 손질하면 가장 좋겠지만 다듬어진 목재로 만들어도 내 손으로 가구를 만들었다는 기쁨은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미리 마름질해 놓은 목재(오른쪽 사진)와 이를 가지고 만든 와인랙. 정종상 소목장 제공
반사경을 손수 깎고, 여러 부속을 조립해 만든 대구경 천체 망원경(왼쪽 첫번째 사진). 위 사진은 망원경 렌즈를 만들 수 있는 특수 유리와 망원경 앞뒤를 막는 금속 부품을 비롯한 여러 부속품이다. 제작자 한승환 씨는 “거울까지 직접 만드는 이들은 손으로 꼽는다”며 “기성품보다 정밀도가 높다”고 했다. 한승환 씨 제공
이마저도 귀찮은 소비자를 위해 80∼90% 완성된 제품에 약간의 수고만 더하면 되는 제품 시장도 활짝 열리고 있다. ‘만드는’ 느낌만 주는 것이다. 워킹맘 이연서 씨(36)의 집에는 요즘 아침마다 갓 구운 빵의 향기가 피어오른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한 냉동생지(빵 반죽)를 에어프라이어로 굽는 냄새다. 빵 만들기를 좋아해 베이킹을 배우기도 했지만 시간을 내기 어렵던 차에 아쉬운 대로 ‘굽는다는 느낌’이라도 즐긴다는 것이다. 이 씨는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 어느 세월에 반죽을 하고 있겠나”라며 “특히 갓 구운 향과 바삭한 느낌이 중요한 크루아상의 만족도가 높다. 때로 반을 잘라 햄, 치즈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면 느낌만은 마치 처음부터 손수 빵을 만든 듯하다”고 했다. 냉동생지 소비가 늘자 대형마트의 상품 출시도 잇따르고 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집에서 간편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가정간편식(HMR)의 매출이 올해 11월 20일까지 전년 동기보다 7.4% 늘었다. 호떡 등을 만드는 믹스 제품도 마찬가지다.
반제품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경에는 취미와 여가로 ‘DIY’를 즐기는 층의 확대와 불경기 속 ‘가성비’ 소비문화가 맞물려 있다. 한국소비자원장을 지낸 이승신 건국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는 “다듬은 재료나 반제품을 공급하는 틈새시장에서 다양한 창조적 스타트업 기업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인 이들을 위한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종엽 jjj@donga.com·김기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