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창간 아동잡지 ‘어린이’
‘어린이’는 방정환을 중심으로 개벽사에서 발행한 아동 잡지이다. 오른쪽은 1923년 3월 20일 ‘어린이’의 창간호. 인물 사진은 방정환, 윤극영, 이원수(왼쪽부터).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잡지100년’
○ 잡지 ‘어린이’의 탄생
위에서 말한 동요들은 각 지역에 사는 어린이들이 ‘어린이’라는 잡지에 보낸 동시에 곡을 붙여 부른 노래입니다. 잡지 ‘어린이’는 1923년 3월 20일에 창간됐으며, 1934년 7월까지 122호를 발행했습니다.
잡지 ‘어린이’의 발행과 편집을 주도한 인물은 방정환입니다. 그는 최남선이 발행한 잡지 ‘소년’, ‘새별’ 등을 읽고 문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1910년대에 다양한 아동문학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어린이가 잘 자라야 우리 민족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방정환은 ‘어린이날’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편집진은 작품을 통해 어린이 독자층을 확보함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역사, 문화, 지리에 대한 지식을 널리 전파했습니다. 1925년 신년호에는 “조선말, 조선 글, 조선 역사, 조선 생각을 잘 알아야 하며, 이 네 가지를 잘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고 홍보했습니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훈민정음, 금속활자, 거북선, 대동여지도, 금강산, 무궁화 등을 소개했습니다. 편집진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조선의 어린이들에게 민족 공동체 의식과 애국심을 심어주려 했습니다.
○ ‘어린이’를 통해 등장한 아동문학의 별
‘어린이’를 통해 등장한 인물들은 아동문학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이원수(1911∼1981)는 12세부터 ‘어린이’, ‘신소년’ 등의 잡지를 애독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경남 창원의 시골 마을을 생각하며 ‘고향의 봄’이라는 제목의 동시를 지어 투고했고, 1926년 4월호 은상에 당선됐습니다. 처음에는 이일래라는 분이 작곡하여 불렀고, 1929년에는 홍난파 선생이 다시 작곡해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이원수는 1936년 아동문학 1세대 소녀 최순애와 결혼하였습니다. 최순애는 ‘오빠 생각’을 투고해 당선된 인물이었습니다. 둘은 서로의 작품을 보고 감상평과 편지글을 나누다가 결혼했습니다. ‘오빠 생각’에는 비단 구두를 사 집에 오기로 약속했던 오빠를 기다리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조선의 어린이들은 아동문학 1세대의 노력 덕분에 일본 노래 대신 우리의 동요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또 오늘날 어린이들도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가 됐습니다.
1920년대 신문이나 잡지들은 일제의 엄격한 검열을 받았습니다. 아동 잡지인 ‘어린이’ 역시 심한 검열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검열 속에서도 신문과 잡지는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국민을 계몽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환병 서울 용산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