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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트럼프 행정부의 패권주의

입력 | 2019-11-27 03:00:00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말할 때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표현을 씁니다. ‘팍스(Pax)’는 라틴어로 평화를 의미합니다. 로마 제국이 지배하던 때를 ‘팍스 로마나’라고 하고, 대영제국 시절을 일컬어 ‘팍스 브리타니카’라고 한 데서 연유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과 각축하며 냉전체제를 이끈 미국은 베트남전쟁(1964∼1975년)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1980년대에 니카라과, 리비아 등을 침공했으며 1990년대에는 34개 다국적군과 함께 걸프전쟁(1990∼1991년)을 승리로 이끌어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소련의 붕괴로 냉전체제가 막을 내리자 팍스 아메리카나의 행보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소말리아, 이라크, 유고슬라비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르완다, 동티모르 등을 공격하거나 내전에 개입하면서 세계 질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미국의 패권주의는 멈추지 않습니다. 중국이 군사력을 강화하고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신실크로드 전략) 등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자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중국 기업 화웨이를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집중 견제하기도 합니다.

최근 미국은 우리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도록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결국 정부는 지소미아를 둘러싸고 당사국 간 막후 채널을 가동하는 등 진통을 겪다 조건부 연장으로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지소미아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 수출 규제 조치 등과 함께 한일 간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입니다. 지소미아 종료라는 우리 정부의 전략적 선택을 되돌리려는 미국의 압박에 대해 국내 여론의 반감이 상당했습니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우리를 더욱 힘겹게 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은 현행 분담금의 5배를 더 부담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도가 지나치니 우리 정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 주요 언론도 비판적 기사를 쏟아냅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달 초 “트럼프의 접근 방법이 미군을 영리 목적의 용병으로 격하시키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신문은 “한국은 미군을 유지하는 데에 드는 비용의 절반을 지불하고 미국에서 무기를 구매하고 있다”며 “트럼프의 끔찍한 요구는 한국 정부나 국회가 인정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모욕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의 언어학자 놈 촘스키(91)는 ‘불량국가’(2001년)라는 책에서 미국을 ‘불량국가(Rogue State)’라고 언급했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자신들이 주도하는 질서에 따르지 않는 국가들에 ‘불량국가’라는 낙인을 붙였습니다. 이란, 시리아, 북한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촘스키는 거꾸로 국제사회의 질서 대신 자신들의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을 불량국가라고 지칭한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와 질서 있는 세계는 일방향성을 띠지 않습니다. 패권과 폭력은 동전의 앞뒤와 같이 맞닿아 있습니다. 상호 존중과 신뢰를 전제로 호혜의 원칙에 철저히 부합될 때 균형 있는 평화의 질서가 만들어집니다. 미국의 패권적 힘에 굴복하거나 아픔을 겪은 나라의 국민들은 과연 ‘팍스’의 의미를 평화로 해석할까요.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