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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 없는 가격 통제 정책… 집값은 시장에 맡겨야[광화문에서/신수정]

입력 | 2019-11-27 03:00:00


신수정 산업2부 차장

2007년 한 부동산 개발회사(시행사) 사장은 노무현 정부가 민간택지에도 분양가상한제(분상제)를 확대 적용하기로 하자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동안 벌었던 돈을 직원들에게 퇴직금 조로 나눠주면서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몇 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걸로 버텨봐라. 분상제 적용되면 이 일 못 한다. 손해 보고 사업할 수는 없다. 분상제 없어지고 시장이 괜찮아지면 다시 부르겠다.” 20년 넘게 부동산 업계에 몸담고 있는 이가 시행사 사장에게 직접 들었던 말이라며 전해준 이야기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9월 분상제 민간택지 적용을 본격 시행했다. 분양가를 통제해 집값을 잡아보겠다며 꺼낸 카드였다. 분양가가 낮아지면 시행사들은 수지를 맞추기 힘들어 분양을 꺼리고 주택 공급은 줄어들게 된다. 수요는 줄지 않는데 공급이 줄어드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2007년에 선보여졌던 분상제는 이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2007년 1월 72.5였던 한국감정원의 서울 아파트 실거래 가격지수는 2008년 5월 82.5까지 올랐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유명무실해진 민간택지 분상제를 문재인 정부가 다시 꺼내 들었다. 정부는 이달 6일 강남 4구와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구) 등 서울 27개 동에 분상제를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아 본격 효과를 거론하기엔 이르지만 분상제 도입 취지가 무색할 만큼 집값이 주춤하기는커녕 계속 오르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8일 기준 서울 주간 아파트 가격은 0.10%로 전주(0.09%)보다 상승 폭이 확대됐다. 강남 4구의 아파트값은 0.14% 뛰어 지난해 9·13대책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경기 과천, 부산 등도 올라 상승 지역은 확산되는 분위기다.

최강 카드로 여겨지던 분상제로도 집값이 잡히지 않는 현실에 부동산 시장은 덤덤하다. 예상했던 결과여서다. 분상제 도입을 앞두고 많은 이들은 공급 축소에 따른 가격 상승과 청약 열풍을 우려했다. 최근 서울 아파트 중에서는 실거래가 기준으로 최고가를 경신한 곳이 많다. 인기 단지의 청약 경쟁률은 세 자릿수를 넘고 청약 커트라인은 만점에 육박한다.

정부는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부담을 줄여주고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분상제를 확대 적용하는 것이라고 여러 번 밝혔다. 요즘 집만 생각하면 가장 가슴이 답답한 이들은 무주택 실수요자다. 급격히 오른 집값을 보면 무리해서라도 대출을 받아 진작 집을 사지 못한 자신이 미워진다. 로또가 된 청약은 점수도 점수지만 대출 제한 때문에 현금 부자들이나 가능하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부동산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정책 목표인 실수요자 중심의 안정적 시장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강남 집값을 가격 통제를 통해 잡겠다는 환상부터 버리라는 조언이 많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강남 집값을 잡고 싶으면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어주고, 다주택자 양도세를 완화시켜 집을 팔게 해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여러 정부의 냉·온탕 정책에 적응하면서 웬만한 규제에는 내성이 생겼다. 부동산도 공급과 수요에 충실한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수정 산업2부 차장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