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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단식 텐트’로 모이는 정치… 패스트트랙 처리 고민 커진 與

입력 | 2019-11-27 03:00:00

여야 대표 줄방문 ‘장외 회동장’ 돼… 서먹했던 손학규-유승민도 찾아와
黃, 삭발-장외집회 이어 파격카드… ‘즉흥적’ 우려에도 정치효과 상당
단식 7일째 기력 떨어져 거동 못해… “아직 할일 남았다” 병원행 거부



자유한국당 최고위원과 지도부가 26일 오후 9시 10분경 청와대 사랑채 앞에 설치된 천막에서 7일째 단식 중인 황교안 대표를 방문해 단식 중단을 설득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보라, 김순례, 정미경 최고위원. 사진공동취재단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단식이 26일로 일주일째를 맞았다. 황 대표 단식이 선거법 개정안의 27일 국회 본회의 부의를 계기로 다시 가열되고 있는 여야 패스트트랙 협상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일각에선 정치 초년생인 황 대표의 ‘지르기 정치’가 효과를 발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숱한 당내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대규모 장외집회와 삭발에 이은 단식이 예상외의 주목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 황교안 “할 일 남았다”며 병원행 거부


26일 청와대 앞 단식 농성텐트. 황 대표는 이날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파란 마스크를 쓰고 침낭을 덮은 채 안에 누워 있었다. 전날에는 지지자들에게 인사차 한 차례 천막 밖으로 나왔지만 기력이 급격히 떨어진 데 따른 것이다. 김도읍 당대표 비서실장은 “물을 1000∼1500cc밖에 못 마셔서 신장 이상 징후인 단백뇨(단백질이 섞인 소변)가 나오고 감기까지 겹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고 전했다.

황 대표는 이날 오후 9시 10분경 농성장을 찾은 최고위원들에게 누운 채로 “아직 할 일이 남아 더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병원행을 완강히 거부했다고 정미경 최고위원이 전했다. 약사 출신인 김순례 최고위원은 “단백뇨가 피가 섞인 혈뇨로까지 악화되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병원으로 모셔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오전에 이어 오후 10시에도 농성장을 찾은 나경원 원내대표는 “제1야당 당 대표가 단식하는데 (패스트트랙 현안에) 여당이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했다. 당 관계자는 위급상황 시 황 대표를 이송할 병원을 미리 섭외해두고 밤늦게까지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에 대한 국회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황 대표의 단식 천막이 여야의 장외 회동장이 되는 현상도 벌어졌다. 10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고성을 주고받았던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6일 보수통합 협상 제의 후 만난 적 없던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도 26일 각각 황 대표를 찾아왔다. 단식 일주일 동안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제외하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25일), 민주평화당 정동영(22일) 등 여야 3당 대표들이 모두 단식 현장을 찾았다.

오후 3시경 농성장에 온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이 나라 민주주의는 이렇게 싸워서 지켜왔다”고 말하다가 실수로 황 대표를 ‘황교안 대통령’으로 칭하기도 했다. 오후 7시경부터 현장에 경찰이 충원되자 ‘전날 한국관광공사(청와대 앞 농성장 부지 관리기관)가 예고했던 행정대집행을 하는 것 아니냐’며 긴장감이 고조됐지만 밤사이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 ‘황교안식 즉흥 정치’ 계속 통할까


정치 입문 11개월 차인 황 대표가 측근의 극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강행한 청와대 앞 단식이 정치권의 핵으로 급부상하면서 “황교안식 정치를 다시 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치밀한 정세 분석과 전략을 바탕으로 한 게 아니라 즉흥적인 삭발이나 단식 등 파격적 행동이 예상치 못한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황 대표가 9월 ‘조국 사태’가 한창일 때 제1야당 대표 최초로 삭발 카드를 꺼냈을 때도 측근들은 ‘희화화될 수 있다’며 만류했지만 뜻밖에 ‘투블록 컷 멋쟁이’ 패러디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돌았다. 이번 단식도 최측근 참모들조차 “명분과 시기가 좋지 않다”며 반대했지만 황 대표가 강행했다. 단식 전까지 제기됐던 황 대표의 당 운영 리더십에 대한 비판은 일단 사그라들고 있다.

물론 위기 때마다 삭발, 단식 등 극단적인 카드로만 돌파하는 리더십으론 총선까지의 장기전을 치르기 어렵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당 관계자는 “‘포스트 조국’ 전략이 없었듯 ‘포스트 단식’에 대비한 큰 틀의 전략이 없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언젠가 단식 정국이 끝나면 보수통합과 인적쇄신, 리더십에 대한 공세 등 기존의 당내 문제들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얘기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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