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DLF 투자 피해자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형민 경제부 기자
이달 초 영국 런던에서 만난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의 한 직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규모 손실을 낸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를 두고 “갬블 같은 것, 국가 경제에 도움 될 게 없다”고 한 발언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한국 기업과 거래가 잦아 한국 금융시장을 비교적 잘 아는 이 직원은 “불완전 판매한 은행을 제재하면 되지, 왜 상품을 문제로 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DLF 판매 과정에서 국내 은행들이 보인 행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금감원 검사 결과 일부 은행들은 고위험 상품을 팔 때 거쳐야 하는 내부 심의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원금을 몽땅 까먹을 수 있는 점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판매상품 중 70% 이상은 60대 이상 고령층에게 팔았다. 전체 3243명의 투자자 중에는 노후 자금을 모두 넣었다가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은행들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라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 입장은 완고하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전날 “은행들은 DLF 사태의 피해자인 척하지 말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DLF 사태를 수습하는 금융당국의 대응방식에는 한국 금융의 민낯이 녹아 있다. 사건이 터지면 당국이 금융회사를 전방위로 압박하면서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새로운 시장이 생길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식이다. 이대로는 현 정부 들어 추진해온 금융개혁의 가능성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판이다.
소비자 보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기본 가치다. 하지만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풀어야 한다. 제로이코노미 시대, 글로벌 금융계는 벤처 투자를 늘리고 자본시장을 통한 기업 금융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런 시도를 통해 돈이 장롱 속에 잠기는 ‘돈맥 경화’를 풀고 금융이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에 이런 역할을 바란다면 소비자 보호와 금융 규제개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
김형민 경제부 기자 kalssam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