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나눔]김현진 ‘코리안앳유어도어’ 대표 장애인 일자리 만들고 싶어서 한국어 전화과외 서비스 창업 강사 10명 모두 시각장애인
21일 서울 동대문구 KAIST 경영대학원에 있는 ‘SK사회적기업가센터’에서 김현진 코리안앳유어도어 대표가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한국어교육서비스를 만들어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시각장애인 중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이들은 드물다. 90% 이상이 중도실명이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 예기치 않은 사고나 질병으로 갑자기 시력을 잃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들도 장애를 얻기 전까지 연구자를 꿈꾸는 박사였고, 교사였고, 운동 마니아였다. 김 씨는 이와 같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사나 일용직 이외에 새로운 직업의 세계를 열어주고 싶었다. 사회적 기업 ‘코리안앳유어도어’를 창업한 이유다.
○ 장애인이 가르치는 한국어 교육서비스
“대학 1학년 때부터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편견을 깼어요. 또 이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닌 그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한국에 와서 경북 포항시 한동대에 진학한 뒤 틈나는 대로 유네스코와 월드비전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에서 인턴십을 했다. 특히 정신장애인과 함께 커피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며 일자리 하나로 장애인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모든 사람은 저마다 아픈 구석이 있다. 그게 사회적으로 장애라는 꼬리표를 붙인 아픔인지 아닌지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김 대표는 “어떤 면에선 세상에 정말 나쁜 것들은 ‘비장애인’들이 더 많이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자신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얻은 것에 감사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이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가가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재 ‘코리안앳유어도어’에는 모두 10명의 시각장애인 강사가 활동하고 있다. 10주의 강사교육을 거친 이들은 선생님으로 불리며 해외에 있는 수백 명의 학생에게 전화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여러 장애의 유형 중에서도 김 대표가 ‘시각장애인’에게 관심을 쏟게 된 건 대부분이 중도실명을 경험했다는 점 때문이다. 신체 건강한 사회인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어느 날 날벼락처럼 ‘실명’이라는 상황을 만났다. 이로 인해 앞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하면 더욱 좌절할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1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로 ‘60대 전직 국어교사 A 씨’를 꼽았다. 이 회사의 존재를 알게 된 한 60대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교육을 받고 한국어강사로 일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처음 김 대표는 “부산 지역에서 매주 교육에 참여하려고 서울까지 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재차 일하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마침내 10주 교육을 완수하고 강사로 활동하게 됐다. 그는 20여 년간 국어교사로 일하다 실명으로 교단을 떠난 사람이었다. 그 아쉬움을 이 기회를 통해 풀게 된 셈이다.
서울의 한 명문대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친 청년도 있다. 젊음을 바쳐 공부에 매진하던 그는 시력을 잃고 난 뒤 무기력과 우울에 빠져 한동안 집에서 칩거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회사의 한국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김 대표가 꿈꾸는 목표는 두 가지다. 우선 현재 베트남 중심으로 형성된 고객층을 더 크게 넓히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 이주해 온 다문화 여성의 언어교육이나 중국에서 건너온 유학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 하나의 꿈은 ‘코리안앳유어도어’처럼 장애인들도 신체적 제약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멋진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를 조성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여전히 한국에는 장애인 관련 일자리 정책이 부족하다”며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도 얼마든지 기회가 열려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