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은 양쪽 귀밑머리를 덮었고 피부도 이젠 까칠해졌다. / 아들 다섯을 두었지만 하나같이 종이와 붓을 싫어한다. / 서(舒)는 벌써 열여섯, 게으르기 짝이 없고 선(宣)은 곧 열다섯, 도무지 글공부를 싫어하며 / 옹(雍)과 단(端)은 열셋이지만 여섯과 일곱조차 분간 못하고 통(通)은 아홉 살 다 되도록 배와 밤만 찾고 있다. / 내 운수가 이러할진대 그저 술이나 들이켤밖에. (白髮被兩빈, 肌膚不復實. 雖有五男兒, 總不好紙筆. 阿舒已二八, 懶惰故無匹, 阿宣行志學, 而不愛文術. 雍端年十三, 不識六與七, 通子垂九齡, 但覓梨與栗. 天運苟如此, 且進杯中物.)―‘자식 책망(責子·책자)’(도잠·陶潛·365~427)
쌀 다섯 말 녹봉(祿俸) 때문에 굽신거리지 않겠다고 진작 관직을 내던졌던 도연명이다. 자신은 소신껏 세속의 명리를 팽개쳤으면서 자식의 앞날에 대해선 대범할 수 없었던 것일까. 맏이부터 막내까지 다섯 자식을 하나하나 호명한 작심부터가 별스럽다. 시제가 ‘자식 책망’인 데다 저들의 됨됨이 어느 하나도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다는 질타가 분명해 보인다. 한데 시인이 평생 견지한 생활철학에 비춰 보면 정색을 하고 내지른 책망이 오히려 생경스럽다. 천명으로 알고 술이나 들이켜자는 마지막 구절이 그 방증이다. 뿐이랴.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시인은 “부귀는 내 원하는 바 아니며 신선 세계도 기대하지 않는다. 자연의 변화에 인생을 맡겼다 돌아갈 뿐, 천명을 즐기는 것 외에 무얼 또 의심하랴”고 하지 않았던가. 자식 걱정이야 십분 이해한다 해도 푸념처럼 대놓고 실망을 토로한 이가 도연명이라면 그 진의를 흔쾌히 받아들이기가 망설여진다.
그래서인가. 이 시에 대한 해석도 엇갈렸다. 두보는 성실하지 못한 자식을 도연명이 호되게 훈계한 것이라 보았지만, 송대 시인 황정견(黃庭堅)은 시인의 한탄 너머에 아버지로서의 자상함과 해학이 은근히 스며 있다고 보았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