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최저점, 北核 진전 없는데… 文 “임기 전반기 남북관계 가장 보람” 트럼프도 “노벨상 5개감” 대북정책 자찬 아베도 한일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
이기홍 논설실장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한-아세안 정상회의 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신남방정책에 이어 북방정책에의 의지를 담은 것이다.
육로로 북한 중국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향한다는 비전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모든 지도자가 품었던 꿈이다.
하지만 냉정히 평가하면 남북관계는 매우 저조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대 이벤트는 많았고 남측이 온갖 양보를 했으나 대화와 교류는 막힌 상태다. 남북관계는 떼쓰는 불량청소년과 달래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대는 어른의 관계처럼 흘러왔다.
특히 도를 넘어선 대북 저자세는 안보 분야로까지 전염됐다. “우리가 강한 것은 최강의 무기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전문가이기 때문”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부당한 간섭에 반기를 든 미 해군장관의 결기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우리 군이 통일부가 남발해온 북한 옹호 궤변 대열에는 동참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 바람 역시 무너졌다.
문 대통령은 “불과 2년 전인 2017년만 해도 한반도는 자칫하면 전쟁이 터지지 않을까하는 위험지대였다”며 “그러나 지금은 전쟁의 위험은 제거되고 대화 국면에 들어섰다. 남북관계는 제가 굉장히 보람을 많이 느끼는 분야”라고 말했다.
물론 2017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때와 비교하면 긴장이 완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그해 하반기 구축된 강력한 유엔 대북 제재, 그리고 북한이 핵과 ICBM 개발 완성단계로 접어들며 추가 실험 없이 협상 모드로 전환한 데 따른 것이다.
어쨌든 비핵화와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가 이렇게 어그러진 단초는 작년 6·12 싱가포르 북-미 회담이었다.
문 대통령은 회담 직후 “6·12 센토사 합의는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극찬했지만, 당시 합의가 형편없는 수준이었음을 이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내용 대부분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이었다.
당시 트럼프는 한반도 문제, 비핵화 문제에 대해 초보적 지식도 없는 상태였다. 원샷에 해결지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덥석 정상회담을 잡아놓고 보니,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적대시 정책’의 폐기, 주한미군 핵우산 평화협정 등 동북아 안보체제 전체에 칡뿌리처럼 맞물린 복잡한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전기 작가에게 김정은과의 회담에 대해 “어마어마하게 성공적인 회담이었다”며 “오바마가 그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면 노벨상을 5개는 탔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도 나는 외교 대통령으로 알려질 것”이라고도 자평했다니, 이 정도면 진짜 과대망상에 빠져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북핵 실적이 이처럼 저조한 것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 과대평가, 비핵화로 견인할 당근과 채찍 전략의 부재, 그 바탕이 되어야 할 한미동맹 약화 등이 원인인데 문재인 정부는 정반대로 처방하고 있다.
한미동맹도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분담금 50억 달러라는 억지를 쓰고, 친문 진영에선 미군 지상군 철수론이 공공연히 나오는 게 현주소다.
그나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연기는 문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잘 내린 용단 중 하나로 평가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내 뜻대로 한다는 마이웨이 고집을 꺾은 첫 사례라 할만 하다.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승리를 거뒀다”고 자랑하든 말든 일일이 반응할 가치조차 없다. 아베 정권이 그럴수록 국제사회에서 용렬함만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 외교를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하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가 아베 총리다.
이렇게 한미일 세 나라 모두 지도자가 각자 자신의 외교실적을 자화자찬하면서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성향을 보이고 있고, 그 결과 3자가 서로 부딪치고 있다.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인데 각자 자신이 세팅하는 것을 최선이라고 여기고 상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정책의 일관성을 순식간에 깨기 일쑤다.
외교 안보는 국가이익(내셔널 인터레스트)을 수호하고 이익균형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 책임자들이 생각하는 내셔널이 특정 정부인지, 영원한 국가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국제질서는 민주화·자유무역의 확산 시대를 거쳐 2000년대 들어 경쟁적으로 자유화 쪽으로 가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공정무역질서 확보를 명분으로 내건 패권 무역이 본격화하고 있다. 전후 한국의 지속적인 안정적 성장이 가능했던 국제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국제질서가 펼쳐지고 있다.
이런 격변기에 외교안보 실적을 셀프 과대평가했다가는 임기 후반기마저 훗날 후회할 시간들로 채우게 될 위험이 크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