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현 인터넷 문화를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우리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이달 25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유와 개방 정신을 기치로 하는 웹을 지켜내지 못하면 디지털 디스토피아를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 거짓 정보와 편견, 혐오, 증오가 담긴 언어를 실어 나르며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현상은 거대 플랫폼이 잇달아 등장하며 심해졌다. 플랫폼은 이용자를 오래 붙잡아 둘수록 광고 등 수익이 많아지는 특성상 이용자를 자신의 공간에 가둬놓으려 한다. 이용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려 설계돼 숙의(熟議) 민주주의의 방해 요인이 되기도 한다. ‘개방된 웹’과 ‘폐쇄된 플랫폼’이 상충하는 순간이다.
버너스리는 ‘모두를 위한 웹’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호소한다. 30년 전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특허를 포기하면서까지 웹 기술을 공짜로 개방한 것은 웹이 민주주의 구현의 발판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아버지는 ‘인터넷 구하기’에 나섰다. 정부, 기업(플랫폼), 개인이 지켜야 할 액션플랜인 ‘웹을 위한 계약(Contract for the Web)’을 만들어 이번에 공개했다. 최근 1년간 전문가 자문을 거쳐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를 보호해 신뢰를 쌓고, 특정 집단 괴롭힘을 방지하며, 거짓 정보를 걸러내고, 인터넷을 가치 있는 공간으로 만들라는 등의 촉구를 담았다.
전문가들은 한국 미국 프랑스 등 60여 개국이 일제히 선거에 돌입하는 2020년을 디지털 민주주의를 본격 시험하는 원년으로 본다. 민주주의는 합리적인 토론과 여론 형성을 전제로 하지만, 온라인 세상에선 이상에 그칠 때가 적지 않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페이스북은 이용자 정보를 팔아치워 러시아 정부가 미국 여론을 조작할 빌미를 줬고, 한국 대선에서는 대규모 댓글 조작 사건이 있었다.
내년에 인터넷 공간에서 어떤 위협 요인이 나올지 지금으로선 예측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 웹’을 만들려던 인터넷 아버지의 담대한 정신을 우리가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인터넷 구하기에 나서는 일은 어렵지 않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