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미집행 사형수는 현재 60명. 1994년 100억 원대 재산 상속을 위해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당시 23세)도 그중 한 명이다. 당시 황산성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으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눈물 한 방울 안 보이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3개월 만에 변호를 포기했다.
▷올 4월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흉기로 대피하던 주민 5명을 살해(17명 중경상)한 안인득(42)이 27일 1심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재판부는 안인득이 조현병으로 인한 피해망상과 판단력 저하 등이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범행 과정과 전후 행동을 종합하면 의사결정능력 미약 상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금모 씨는 딸과 어머니가 숨지고, 아내는 딸을 구하러 달려들었다가 중상을 입는 등 일가가 풍비박산 났다.
▷안인득의 변호인이 최종변론에 앞서 “이런 살인마를 변호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했다. 저도 인간이다”고 토로했다. 그는 안인득이 “누굴 위해 변호하느냐”고 소리치자 “저도 (변호)하기 싫다”고 맞받아쳤다. 너무도 끔찍한 범죄 앞에서 변호인조차 오죽하면 그런 말을 했을까. 사형제에는 찬반 논란이 있고 각기 나름의 충분한 이유도 있다. 안인득은 억울하다며 항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생명은 한없이 소중하지만, 인면수심 살인마의 생명도 지켜줘야 하는지…. 참 복잡한 문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