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미국 헤비메탈 밴드 ‘선(Sunn O))))’의 공연 장면. 초저음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시급하다. 사진 출처 ‘선(Sunn O))))’ 밴드캠프 페이지
임희윤 기자
#1. 250의 별난 뽕 사랑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족을 태우고 먼 길을 운전할 때 250의 아버지는 늘 그 카세트테이프를 틀었다고 한다. ‘이박사의 고속도로 메들리’. 평상시에는 클래식이나 고상한 발라드 가요를 선호하던 부친의 이상행동. 그의 한마디가 250의 귓전에 아직도 맴돈다고 했다.
“고속도로 운전할 때는 이걸 들어야 해. 그래야 안 졸려.”
#3. 음악의 실용적 측면을 극대화하는 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고음과 빠른 템포가 각성 효과를 준다면 저음과 느린 템포는 최면 효과 비슷한 것을 형성한다. 부서 회식 때 노래방에서 부장님이 부르시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My Way’를 떠올려보자. 기나긴 저녁 연회의 파장을 재촉하는 그 실용적인 음악의 어마어마한 효과를….
#4. 저음이 지닌 실용적 효과는 막대하다. 최근 영국의 영상 작가 듀오 ‘루벤과 제이미’는 떨어지던 물방울이 중력을 무시하고 거꾸로 솟는 장면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비결은 소리다. 물에 초저음을 분사했는데 주파수 25Hz에서 살짝 내려가던 물방울이 24Hz에서 평행하게 흐르다 23Hz에서 위로 솟기 시작했다.
#5. 인간은 20Hz에서 2만 Hz 사이 주파수 대역의 소리만 들을 수 있다. ‘선’이라는 밴드가 있다. 미국 메탈 밴드인데 영어로는 ‘Sunn O)))’라 쓰고 ‘Sun’처럼 발음해야 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직업상, 또는 좋아서 수천 개의 콘서트를 봤지만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은 공연을 셋만 꼽으라면 그중 하나가 선의 것이다. 그들의 음악은 오로지 공연장에서만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듣는 게 아니라 느낀다는 게 핵심이다. 선은 일반적인 전기기타보다 더 낮은 음을 내는 7현 기타의 저음현을 더 낮게 조율해 연주한다. 여기에 전기기타의 증폭된 굉음과 앰프가 서로 간섭하며 내는 되먹임 소리를 활용한 초저음 노이즈를 더해 공연장을 메운다. 20Hz 안팎의 소리다. 초저음역을 내주는 특수 스피커를 여러 대 설치하는데, 가장 낮은 소리는 들리지는 않고 몸을 울린다고 한다.
#6. 23Hz에서 물방울이 중력을 이긴다면 그보다 낮은 소리는 어떨까. 혹시 신체 전역을 타고 흐르는 혈액에 특정한 반응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선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드론 뮤직(drone music)’이다. 단조로운 음을 몽환적으로 끝없이 반복함으로써 듣는 이를 참선(參禪)의 경지 비슷한 것으로 몰아가는 부류. 인도의 시타르 연주부터 서구권의 실험적인 전자음악이나 록에 쓰이는 방법론이다. 선은 40, 50분간 계속되는 초저음 드론 연주로 듣는 이들을 그로기 상태에 빠뜨린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는 이걸 들어야 해. 그래야 졸려.”
이 밴드의 이름을 이제 내 맘대로 ‘선(Sunn O)))·禪)’이라 표기키로 한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