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지팡이를 든 시각장애인 학생(왼쪽)이 보행지도사와 함께 길을 걷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소영 사회부 기자
이날 A 군은 보행지도사한테서 ‘보행수업’을 받았다. 시각장애인들이 청각과 후각 등을 이용해 등하굣길이나 출퇴근길처럼 자주 다니는 곳의 동선을 익히는 것이다. 이 수업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은 목적지까지 가려면 어디에서 몇 걸음을 옮겨야 하고, 방향은 어디에서 전환해야 하는지 등을 배운다. 빵집 앞이나 세탁소 앞을 지날 때 나는 특유의 냄새를 기억해뒀다가 방향을 가늠하기도 한다. A 군은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차량이 어느 쪽으로 달리는지를 인지했다. 지팡이로 바닥을 짚을 때 나는 소리를 듣고서는 흙길인지 포장도로인지를 구분했다.
서울맹학교 학생들이 학교 주변길 보행에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이크와 확성기 등의 소음 때문이다. 학교 근처에서 ‘문재인 하야 범국민 투쟁본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톨게이트 노조’가 몇 달째 집회를 열고 있다. 이날 지팡이를 짚어가며 길을 걷던 A 군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거나 차량이 많이 다니는 곳을 지날 땐 걸음을 멈춰야 했다. 지팡이가 땅에 닿으며 내는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맹학교 주변에서 집회 소음이 한창 심했던 올여름엔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지팡이 대신 부모들의 손을 꼭 붙들고 다녀야 했다고 한다. 박은애 설리번학습지원센터장은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은 시각장애인들이 산책하러 자주 가는 장소였다”며 “하지만 소음이 심한 집회가 계속되면서 위험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은 대부분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헌법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의 이동권과 안전을 위협할 정도의 소음을 내는 건 자제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귀를 잠시 막으면 괜찮을 정도의 소음도 시각장애인에겐 걸음을 떼지 못하게 할 만큼 두려운 존재일 수 있다.
김소영 사회부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