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과기원 ‘수소 미생물’ 연구 활기
강성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생명공학연구센터장이 ‘서모코커스 온누리누스 NA1’(작은 사진)를 배양한 장치를 보여주고 있다. 2002년 심해에서 분리된 뒤 17년간 수소 생산성에 최적화됐다. 강 센터장은 “배양기에서는 수소 외에 다양한 소재를 발굴할 수 있다”고 했다. 부산=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이 미생물은 20분 만에 세대가 늘어날 정도로 번식이 빠른 데다, 친환경 연료로 주목받는 수소를 생산하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17년간 ‘진화’를 거듭한 끝에, 지금은 수소 생산 능력을 영화 속 ‘헐크’급으로 늘렸다. 해양과기원은 미생물을 이용해 바이오 수소를 대량생산하는 실증 실험을 기업 주도로 진행 중이다. 강성균 해양과기원 해양생명공학연구센터장은 “미생물을 이용한 수소(바이오수소) 생산 기술은 분명 세계적으로 선두 수준”이라며 “그 시작이 17년 전, 해양조사선을 통해 발굴한 심해 미생물 발굴과 이를 분리, 배양하고 개량한 기초연구였다는 점에서 생명공학자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생물의 보고’인 바다는 다양한 극한 환경이 존재해 거기에 적응한, 초능력에 가까운 극한 기능을 갖춘 미생물로 가득하다. 80도가 넘는 고온에서도 살아남는 미생물, 유독한 황을 먹고 소화하는 미생물, 강한 산성에서도 생존하는 미생물이 그렇다. 현재 바다에는 최대 10억 종의 미생물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 전체에는 약 1조 종의 미생물이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인간은 아직 그 가운데 0.06%에 불과한 600만 종만 파악하고 있다.
이 미생물은 다른 이유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수소를 생산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수소는 에너지를 만들고 나면 물만 배출하는 친환경 연료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올 초 교통과 에너지 저장 분야를 혁신하기 위한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기도 했다. 수소경제로의 진입 과정에서 가장 큰 난제는 수소 생산 기술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얻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 효율이 낮다. 현재는 석유화학 공정에서 나온 부생수소를 주로 쓰고 있다.
반면 이 미생물은 일산화탄소나 개미산, 전분 등을 먹이면 수소를 생산한다. 미생물의 DNA 전체(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186만 개의 염기쌍을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 5%가 수소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효소 7개를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불필요한 기능을 줄이고 오직 극한 조건에서 생존하기 위한 ‘초능력’에 집중하는 미생물인 것이다. 연구팀은 2010년 ‘네이처’에 이런 사실을 소개했고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수소를 부생산물로 내놓는 미생물은 이 미생물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지만, 이 미생물은 다양한 물질을 먹을 수 있는 데다 대사 과정에서 반드시 수소를 내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아 ‘미생물 공장’을 현실화할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됐다.
해양과기원은 곧장 이 미생물의 생물학적 기능과 수소 생산 원리를 밝히고 기능을 강화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또 효율적으로 수소를 낼 수 있는 공정도 개발했다. 강 센터장은 “원래는 산소가 존재하면 살 수 없는 혐기성 미생물이었지만 지상에서 실험을 거치며 약한 산소에 노출돼도 생존할 수 있게 됐다”며 “생산성도 크게 좋아져, 2002년 원래 균 상태에 비해 성장은 140배 빨라졌고, 생산성은 125배 향상됐다”고 말했다.
해양과기원은 산업 현장이나 발전소 등에서 나오는 부생가스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공정을 연구하고 있다. 부생가스에는 일산화탄소가 들어 있으며, 국내에서 매년 1680만 t, 세계적으로는 4억 t이 발생한다. 연구팀은 미생물을 이 새로운 ‘먹이’에 맞춰 적응시켰다. 이미 2016년 충남 당진제철소에서 1t으로 규모를 키운 배양기를 이용해 부생가스를 이용하는 공정을 시험하는 데 성공했다. 2017년부터는 태안 서부발전본부에서 경동엔지니어링 주관으로 50t 규모의 배양기를 쓰는 실증(데모) 플랜트로 실험을 진행 중이다. 1년에 330t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수소자동차 1000∼2000대가 1년간 쓸 수 있는 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