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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고래 심장 ♥ 소리는?

입력 | 2019-11-29 03:00:00

美연구팀, 심장박동수 측정 성공… 먹잇감 찾는 물속에서 1분에 2회
수면 위에선 분당 25∼37회 뛰어




미국 연구팀이 대왕고래에 심전도 측정 장치를 붙여 심장박동의 비밀을 밝혔다. 미국해양대기청 제공

지난해 8월 2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만 해안에 대왕고래 한 마리가 물을 뿜으며 집채만 한 몸집을 드러냈다. 대왕고래는 육상과 바다를 통틀어 지구에 사는 동물 가운데서 몸집이 가장 크다. 대왕고래의 절반도 되지 않는 조그만 모터보트가 하얀 물보라를 튀기며 뒤를 쫓기 시작했다. 보트 앞쪽에는 한 남성이 자신의 키보다 서너 배 긴 작대기를 들고 서있었다. 고래가 갑자기 몸을 틀기라도 하면 보트가 곧장 뒤집힐 것처럼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남성은 고래가 다시 숨을 쉬기 위해 수면에 나온 순간 오른쪽 지느러미 위쪽 등을 막대기 끝으로 쿡 찔렀다. 막대기 끝에 달려 있던 작은 주황색 장치가 고래 등에서 작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고래의 심장 소리를 ‘사냥’하는 연구자들이다. 제러미 골드보겐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팀은 대왕고래 몸에 심장의 전기 신호를 읽는 심전도 장치를 달아 세계 최초로 대왕고래 심장 박동을 측정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25일 공개했다.

대왕고래는 다 자라면 몸길이는 평균 25m, 몸무게는 70t으로 KTX 한 량보다도 길다. 매일 주 먹잇감인 크릴새우를 2t 이상 먹어치워야만 큰 덩치를 유지할 수 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물속과 수면을 오가며 배와 폐를 채우는 행동을 반복한다.

연구팀은 사각 도시락만 한 상자에 네 개의 밥그릇 모양 빨판을 달아 고래 피부에 착 달라붙게 만든 장치를 제작했다. 상자 안에는 심전도 장치와 위치 추적 장치, 카메라를 넣었다. 이 측정 장치는 8시간 30분 동안 대왕고래에 붙어 있었다. 연구팀은 한참 후 고래에서 떨어져 나온 측정 장치를 바다에서 수거했다.

수거한 상자에선 인간이 고래를 발견한 이후 수천 년간 품어온 궁금증을 풀어줄 값진 성과들이 나왔다. 대왕고래는 물속에서 바쁘고 오히려 수면에선 휴식하는 것 같지만 그와 반대 결과가 나왔다. 물속에선 심장박동수가 분당 4∼8회가량으로 떨어졌다. 가장 많이 떨어졌을 때는 분당 2회였다. 크릴새우 무리를 발견하고 한 번에 삼키기 위해 입을 벌리며 돌진할 때는 그보다 2.5배 빨리 뛰었다. 반면 호흡을 위해 수면에 올라왔을 때는 심박수가 분당 25∼37회로 확 뛰었다. 과학자들은 짧은 호흡 시간 동안 조직에 산소를 빠르게 공급하기 위한 신체 반응이라고 보고 있다.

이번 측정 결과는 많은 걸 설명해 준다. 몸집 크기로 따지면 대왕고래는 이론상 분당 15회는 뛰어야 하지만 실제론 그 절반에 그쳤다. 300kg가 넘는 대왕고래의 거대한 심장은 한 번 뛸 때 80L의 피를 뿜는데, 혈관이 급격히 팽창했다가 천천히 방출하며 심장을 덜 뛰게 하는 것이다. 최대 박동수를 뜻하는 한계 심박수는 과학자들이 내놓은 예측과 비슷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대왕고래의 몸집이 더 커지지 않은 이유를 뒷받침하는 근거다. 심장이 몸 곳곳에 산소를 공급할 수 있는 한계가 지금의 덩치라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대왕고래가 지금처럼 커진 이유로 과거 빙하기 때 먹이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점을 꼽는다.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이 지난해 고대에 살았던 고래부터 지금의 고래까지 76종의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 크기가 최대 10m이던 고래가 빙하기가 찾아온 약 450만 년 전 급격히 커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빙하와 만년설이 육지를 덮었고 여름에 이들이 녹으며 땅의 영양분을 연안에 쏟아부었다. 이때 나온 플랑크톤과 이를 먹이로 하는 크릴새우가 늘었고 덩달아 고래 몸집도 커졌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