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이 아들 ‘필구’역 김강훈 “내 몸에 필구가 들어있는 느낌”
‘동백꽃 필 무렵’을 촬영하면서 김강훈 군은 키가 3cm 컸다. 200일이 된 여자 친구도 있다고 한다. 김 군은 “내가 먼저 고백했다. 친구들은 아니라는데 내 눈엔 ‘아이린’”이라며 웃었다. KBS 제공
올해 3월 초,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오디션이 끝난 후 김강훈 군(10)이 엄마를 보자마자 말했다. 차분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밥상머리에서 “내가 엄마를 지킬 수밖에 없다”며 엉엉 우는 필구 연기에 오디션장에서 임상춘 작가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김 군은 이 오디션을 위해 1, 2회 대본 약 8장 분량의 대사를 달달 외웠다. 차영훈 PD는 “많은 아역 배우 중 강훈이는 압도적이었다”고 회상했다.
8개월 뒤 김 군은 ‘동백이 아들’, ‘필구’로 누구보다 ‘핫’한 10대가 됐다. 첫 회 시청률 6.3%(닐슨코리아)부터 마지막 회 23.8%로 종영하기까지, 많은 이들이 김 군을 ‘신스틸러’로 꼽는다. 차 PD도 “강훈이는 유승호, 여진구의 계보를 이을 것”이라고 했다.
“‘인생캐(인생캐릭터)’인 건 확실해요. 아직도 제 몸에 필구가 들어 있는 느낌이라서요.”
올해로 데뷔 7년 차인 김 군은 “아홉 살 때부터 연기가 재미있어졌다. 그 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랐다”며 웃었다. 지난해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배우 이병헌의 아역으로 첫 사극에 도전했던 시기가 변곡점이 됐다. 엄마 유시정 씨(38)는 “연기를 배운 적은 없지만 산만하지 않고 감독님의 지시를 잘 따른다”고 했다.
우는 연기를 할 때마다 “엄마가 죽는 상상을 했다”던 김 군은 ‘동백꽃…’을 촬영하며 캐릭터에 몰입하는 법을 알게 됐다. 차 PD는 “회가 거듭될수록 ‘이 친구가 사춘기가 오는 건가?’ 싶을 정도로 성장을 했다”고 말했다. 촬영 전날 집에서 연습을 하던 김 군은 “지구가 멸망하는 줄 알았어!”라는 대사를 하며 오열했다. 유 씨는 “보통 현장에서 울지 못할까 봐 연습 때 울지 말라고 하는데 처음으로 놀랐다”고 했다.
‘애어른’ 연기에도 여전히 김 군은 게임과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10세 소년이다. “쑥스럽다”며 엄마, 아빠와 함께 본방 시청도 못 했다고 한다. 대본 암기 비법을 묻자 “밖에 나가 놀고 싶어 빨리 외워진다”고 답했다. 최근 축구선수에서 배우로 꿈을 갈아탄 김 군에게 ‘연기란 무엇일까’를 묻자 ‘애어른’ 답이 돌아왔다.
“연기는 일상인 것 같아요.”
▼티격태격 부부 역 오정세-염혜란 “만들어가는 재미 쏠쏠했죠”▼
KBS ‘동백꽃 필 무렵’에서 부부로 나온 오정세(왼쪽 사진)와 염혜란. 오 씨는 “혜란 씨 덕분에 ‘국민 남동생’이 됐다”고 웃었다. 염 씨는 “홍자영 캐릭터의 인기는 8할이 작가, 2할이 정세 씨 덕분이다”고 했다. 프레인TPC·에이스팩토리 제공
처음 호흡을 맞췄지만 이미 둘은 “마음이 열려 있는 상태”였다. 오 씨는 10년 전 연극 ‘차력사와 아코디언’으로 무대에 선 염 씨를 만났다. 영화 ‘극한직업’에서 테드 창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오 씨를 보며 염 씨는 “좋은 작품에서 만나길 기다렸다”고 했다. 염 씨는 ‘걸크러시’ 이미지와 다르게 여린 구석이 많았다. 촬영장에서 다시 찍고 싶다는 말도 잘 못하는 염 씨를 위해 오 씨가 제작진에 “다시 하고 싶대요”라며 총대를 멨다.
의외로 애드리브는 적었다. 그만큼 대본이 “심하게 재밌었기 때문”이다. “쏘리라굽쇼”, “왜 드리프트를 타떠(탔어)?” 등 규태의 우스꽝스러운 대사도 철저히 대본 그대로다. 염 씨는 “배경음악(BGM)까지 쓰인 대본은 처음 봤다”며 웃었다.
“지문도 묵히기 아까워 대사화했어요. ‘(주먹을 쥐고 입술도 앙 물었네) 한 대 치시것소?’가 원래 대본인데 지문까지 다 읊었죠.”(오정세)
그래도 오 씨는 간간이 애드리브를 던졌다. 자영의 코를 잡고 “네가 먼저 했다”는 말은 용식(강하늘)의 대사를 똑같이 한 것. 또 그는 동백이 운영하는 술집 ‘까멜리아’ 입간판 문구(‘당신만을 사랑합니다’)가 문득 떠올라 거짓말 탐지기 앞에서 자영에게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 긴장이 풀리자 둘은 종종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짰다. 그렇게 탄생한 ‘멜빵 키스’도 후드 끈을 잡아당기는 용식과 동백의 키스 장면에 대한 ‘오마주’였다.
역에 대한 몰입은 소소한 디테일로 이어졌다. 허세로 가득하지만 빈틈이 많은 규태를 보여주기 위해 오 씨는 양말을 거꾸로 신거나 흰색 바지에 원색 속옷을 입었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대통령경호실 글자가 박힌 시계도 구했다. 그는 “한 끗 차이가 쌓이다 보면 나중에 뛰어넘을 수 없는 차이를 만든다”고 믿는다.
“지하철을 탔는데 옆에 앉은 두 분이 휴대전화로 ‘동백꽃…’을 보며 미소 짓더라고요. 행복했죠. 물론 저를 알아보진 못했어요. 하하.”(오정세)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