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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불순한 연동형 비례제, 절대 반대다

입력 | 2019-11-29 14:44:00


속았다. 독일식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해서 난 상당히 선진적이고 공정한 선거법 개정안인 줄 알았다. ‘진보’를 자부하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시절에 내놓은 합의안이니 사특(邪慝)하진 않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올해 3월 기자간담회 중인 심상정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안철민 기자 acm@donga.com



“정당의 득표율에 의석수를 맞추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핵심”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문제는 ‘연동형’ 아닌 그냥 비례대표제도 분명 존재하는데(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비례대표제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 밝히지 않았다는 거다. 비례대표 수를 계산하는 방법을 기자들이 묻자 심상정은 “산식(算式)이 복잡하다”며 국민은 몰라도 된다는 식으로 오만을 떨었다.

● 내 칼럼 비판한 뉴스톱에 감사하지만

29일 뉴스톱이라는 매체는 동아일보에 쓴 내 칼럼 심상정과 좌파 독재를 위한 ‘야만의 트랙’을 놓고 “전체 의석수를 지지율에 따라 배분하는 제도에 독일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유럽 여러 나라를 줄줄이 열거한 뒤 “김순덕 대기자 같은 이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독일만 실시한다’는 거짓말 또는 말장난을 얹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아 김순덕의 '연동형'과 '다당제'에 대한 몰이해

‘뉴스톱’ 홈페이지 캡처


그 많은 나라들이 하고 있는 비례제는 순수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24개국이 채택하고 있다. 우리처럼 소선거구에서 다수대표제로 지역구 의원을 뽑고, 비례대표를 따로 뽑는 경우를 혼합제라고 하는데, 여기서 또 연동형과 병립형이 갈라진다.

병립형이란 우리나라처럼 지역구 당선자에다 정당득표율로 얻은 비례대표를 더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헝가리, 리투아니아, 멕시코가 이렇게 한다.

● 정의당을 위해 연동형 도입한 셈

그럼 연동형은 뭐냐. 지역구에서 당선자가 얼마 나왔든, 전체 의석수는 정당득표율과 연동시켜 조정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렇게 연동형을 하는 나라는 독일과 뉴질랜드 2곳이라고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인용해 밝혔다.



뉴질랜드는 독일과 또 다르다. 독일처럼 초과의석 발생 시 조정 작업을 통해 추가의석을 주지도 않고, 독일처럼 권역별 비례대표를 뽑는 게 아니라 전국 단위로 뽑는다(김한나, 박현석의 2019년 논문 ‘연동형 비례제와 정당 민주화: 독일과 뉴질랜드 주요 정당의 공천제도 비교연구’).

독일식 연동형은 비례의석을 군소야당만 받는 게 특징이다. 오히려 지역구에서 당선자가 많이 나올수록 비례의석을 얻기 어렵다. 민노총처럼 확고한 지지층을 지닌 정의당이 연동제에 목을 맨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구에 자신 없는 기타 정당들에도 당연히 유리하다.

● 2차대전 패전국 독일의 슬픈 연동제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도 작년 말 이슈브리핑에서 이렇게 밝혀 놨다.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독일을 제외하고는 그 사례가 많지 않음.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지구상의 가장 좋은 선거제도라면 모든 나라가 채택할 것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독일식 선거제도에도 역기능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됨. 뉴질랜드는 전국명부 연동형 비례대표제, 네덜란드와 스웨덴은 지역구 의원이 없는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임”(‘권역별 비례대표 의석배분방식에 따른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의 시사점 검토’ 김영재 민주연구원 수석연구위원·행정학박사)

그렇다면 왜 독일은 다수당에 절대 불리한 이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것일까. 독일에서 수학한 김종인 박사는 “2차대전 패전국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는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특정 정당의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다.

독일식 연동형은 의석 배분 과정이 매우 복잡해 선거전문가조차 혼란스러워한다는 논문도 나와 있다(김종갑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비판적 평가와 대안모델의 탐색’). 비례성을 높이려면 ‘스칸디나비아식’ 비례대표제를 택하면 된다. 비례의석 배분만 지역구선거의 의석 과점과 연동시키는 거다.

● 민주당 “좌파연정 위해 손해 감수”

그럼에도 집권세력은 굳이 독일식 ‘연동형’을 고집하니 의도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첫째는 군소야당에 유리하게 선거법을 바꿔주는 조건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다. 아니라면 굳이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안을 패키지로 패스트트랙에 올렸을 리 없다.

둘째는 정의당과의 연정으로 장기집권을 꾀하기 위해서다. 민주당이 한국당을 빼고 폭력사태를 유발해가며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려놓은 뒤, 이 당의 전략통인 이철희 원내수석부대표가 솔직하게 밝힌 바다.

“비례성이 올라가면 민주당은 다수파가 못 되지만 진보파 전체는 넉넉한 다수파가 될 수 있다. 단독 집권해봤자 100석 넘는 제1야당이 막아서면 아무것도 못한다. 진짜 20년 집권을 하려면 진보파가 넉넉한 다수파가 되고, 민주당은 진보파 연정을 주도하는 길로 가야 한다. 이거 하면 우리 의석은 손해다. 그래도 담대하게 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바꿀 힘이 생긴다.”(주간지 ‘시사인’ 5월 7일자)

● 대통령제+다당제, 南美의 길로

민주당이 순수하게 독일식을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수를 정하되 그중 절반만 우선 배분하고 나머지 비례대표 의석은 현행처럼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준연동제’다. 그래서 음선필 홍익대 교수는 ‘이른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관한 헌법적 검토’라는 최근 논문에서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정당득표율에 상응한 의석수보다 더 많은 지역구의석을 차지하였음에도 추가로 비례대표의석을 배분받음으로써 이득을 많이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소야당에 유리한 연동형 비례제로 가면 다당제 시대가 열린다. 뉴스톱은 ‘내각책임제 아닌 대통령제에서도 연정이 가능하며, 연정이 되지 않은 여소야대라도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낫다’고 주장했다.

나는 다당제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비례대표제를 하는 대부분의 나라가 내각책임제라는 점은 중요하다. 뉴스톱도 ‘대통령제이면서 다당제인 여러 나라들(특히 남미 지역)이 고질적 여소야대와 정당 난립에 시달리는 건 사실’이라고 적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남미로 뚜벅뚜벅 갈 모양이다.

● 집권당과 영합한 군소야당, 부끄럽지 않나

연동형 비례제든, 보통 비례제든, 다수당제든, 어떤 제도로 개벽을 하든 국회의원들이 국민만 생각하며 정치 잘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

“상향식 공천제도를 정당법과 선거법에 명시한 독일에서도 실제로는 정당 엘리트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연동형 비례제와 정당 민주화’ 논문은 지적한 바 있다. 누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게 실세들이 비례대표 후보를 주무르는 우리나라에선 문재인 키드, 심상정 키드, 손학규 키드, 정동영 키드가 쏟아져 나오기 십상이다. 제2의 이석기가 나와도 국민은 알 도리가 없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목숨 걸고 단식을 한 것도 좌파 영구집권을 막기 위해서라고 믿고 싶다. 한국당을 좋아하긴 어렵지만 의원 수 늘리려 제1야당 빼돌리고 공수처까지 만들어 바칠 군소야당보다는 백번 낫다.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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