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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농인과 청인 사이… 우리는 경계인입니다”

입력 | 2019-11-30 03:00:00

◇우리는 코다입니다/이길보라, 이현화, 황지성 지음/394쪽·1만8000원·교양인




농인과 청인 세계의 경계를 잇는 코다들은 ‘다양성이야말로 코다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강조한다. 한국 수어(手語)로 표현한 ‘사랑합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인터넷 백과사전의 ‘한국’ 항목을 찾아본다. 한국어와 한국수어(Korean Sign Language)를 사용하는 나라로 나와 있다. 많은 사람이 그 절반의 세상에서 산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이 두 세상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

‘코다.’ 음악 작품이나 악장을 맺는 ‘Coda(종결부)’가 아니다. 이 책의 ‘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s’, 즉 농인(聾人·청각장애를 가진 사람) 부모의 청인(聽人·소리가 들리는 사람) 자녀를 뜻한다.

저자들은 각각 영화감독, 수어(수화) 통역사, 장애인 인권 활동가이며 코다다. ‘코다 코리아’에서 만난 세 사람이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로 살았던 삶과 세상에 대한 외침을 책에 담았다.

그들의 삶은 서로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처음 배운 언어가 부모에게서 배운 수어였던 코다도 있지만 농인인 아버지가 수어조차 못 배우고 집안에서만 통용되는 손짓으로 의사소통을 해나간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의 층위를 더 폭넓게 만들고자 한국계 미국인 코다의 글도 책에 포함시켰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면서 경험한 어려움도 각자 다르다. 부모인 농인이 갖는 어려움과도 다르다. 많은 코다들은 부모가 챙겨주지 못하는 영역을 혼자 헤쳐가면서 부모의 ‘통역사’ 역할까지 떠맡는다. 농인이 못 알아들을 줄 알고 세상이 던진 모욕은 그것을 듣는 코다 자녀의 상처가 된다. 코다인 통역사들에게 농인들은 더 많이 기대하고 요구하며 실망도 더 쉽게 한다.

코다에게 지우는 짐을 세상은 어처구니없이 합리화하기도 한다. 한 저자는 몇 달간 해외를 경험하겠다는 계획을 알리자 후원자가 장학금을 끊었던 경험을 씁쓸하게 토로한다. 후원자는 장학금을 ‘농인 부모를 옆에서 돕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코다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마음의 그림자도 상당 부분 벗을 수 있었다. ‘코다 코리아’의 설립과 해외에서 열리는 코다 인터내셔널 콘퍼런스에서 경험한 연대의 경험들이 이 책의 더 힘찬 페이지들을 만들어낸다.

네 글에서 공통적으로 읽히는 강력한 메시지는 ‘다른 존재로 여기지 말기’이다. 농인을 향한 것이든, 코다를 향한 것이든 마찬가지다. 오늘날 농인/청인을 ‘정상/비정상’으로 범주화하는 일은 얼마간 극복되었어도 농인을 ‘의존적 존재’ ‘약자’로 보는 시각은 여전하다. 그러나 농인들도 수많은 섬세한 다름의 결을 갖는다. 주로 농인 사이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농인’으로 불리기를, 청인 사회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청각장애인’으로 불리기를 선호한다.

이 책은 이 밖에도 여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눈이 온다’를 한국 수어로 직역하면 ‘눈이 있다’, ‘커피가 쓰다’를 직역하면 ‘커피가 짜다’에 해당한다. 감각의 처리에 농인과 청인이 다름을 반영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입말과 수어가 일대일 대응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나타낸다. 이 또한 ‘정상/비정상’을 나눠온 의식의 산물은 아닐까.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