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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파행 단초 제공한 한국당… 본회의 불참해 무산시킨 민주당

입력 | 2019-11-30 03:00:00

‘필리버스터 충돌’에 발목잡힌 국회




자유한국당이 29일 국회 본회의 직전 기습적으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카드를 꺼내든 건 남은 정기국회 일정 기간 중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 있는 선거법 개정안과 사법개혁 법안의 처리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다.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를 저지하기 위해 회의장 불출석으로 이날 본회의 개의를 무산시켰다. 결국 거대 양당의 힘겨루기 속에 ‘민식이법’(어린이 생명안전 법안) 등 애꿎은 민생법안들만 다시 발목이 잡혔다.

필리버스터란 의원들이 안건에 대해 무제한 토론에 나서는 것으로 국회법에 명시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뜻한다. 2016년 2월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이 추진한 테러방지법 처리 저지를 위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고,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들과 함께 9일 동안 38명의 의원이 모두 192시간 25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이어갔다.

필리버스터가 법안 저지를 위한 만능 키는 아니다. 회기 종료와 함께 필리버스터는 자동 종결되고, 해당 안건은 다음 회기에서 즉각 표결에 부쳐지기 때문이다. 테러방지법 역시 필리버스터가 종료된 이후 민주당 등 당시 야당이 퇴장한 가운데 통과됐다.

한국당이 이날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 등과 관계없는 199개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것은 선거법 개정안 상정 자체를 막기 위한 전략이다. 이날 한국당은 의원총회에서 주호영 의원을 시작으로 의원 1명당 4시간씩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기로 했다. 소속 의원 108명이 총출동할 경우 최소 400시간 이상 필리버스터를 이어갈 수 있다. 이날 오후 본회의가 시작된다는 가정 아래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다음 달 10일까지 270시간 안팎을 끌고, 10일 이후 임시국회에서 선거법 개정안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이 상정될 경우 다시 필리버스터를 신청한다는 전략이었다.

민주당은 뾰족한 대응 방안을 내놓지 못한 채 결국 본회의 불참을 결정했다. 필리버스터가 일단 시작되면 한국당의 동의 없인 내년 총선 예비후보 등록일인 12월 17일 이전에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필리버스터 중단에 필요한 재적의원 5분의 3을 현실적으로 채우기도 쉽지 않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정면충돌로 본회의가 파행된 데에 대해 정치권에선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는 “모든 민생 법안에 대해서까지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것은 국민의 이해를 받기 어렵다”면서도 “한국당을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붙이면서 힘으로 밀어붙인 집권당에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정의당은 논평을 통해 “결국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안의 패스트트랙을 저지하는 데 민생을 볼모로 잡겠다는 것”이라면서 “차라리 이럴 거면 의원직에서 총사퇴하라”고 한국당을 비판했다.

본회의가 이날 무산됨에 따라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는 다음 본회의 개최 일정과 함께 예산안 심사를 계속 이어갈지, 정부 원안대로 표결에 부칠지를 논의할 예정이다. 여론 악화를 우려해 민식이법 등 쟁점 없는 민생 법안이나 예산안 처리를 위한 의사일정에는 여야가 합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지현 jhk85@donga.com·조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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