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중 첫 방한… 한국어로 만찬사, ‘노란샤쓰의 사나이’ 노래도 불러 “한민족에 상당히 폐 끼쳐” 첫 사과 5년간 재임… 중의원 20선 기록 “日열도, 침몰 않는 항모로 만들 것” 레이건에 소련 견제 ‘불침항모’ 언급
29일 101세를 일기로 별세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오른쪽)가 1985년 1월 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나카소네 전 총리는 재임 시절 미국과의 협력 강화에 힘써 미일 관계를 운명공동체로 만든 공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스앤젤레스=뉴시스
1918년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에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도쿄대 법학부 졸업 후 내무성 공무원을 지냈으며 태평양전쟁 때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1947년 29세로 자민당 중의원 의원에 당선돼 2003년 은퇴할 때까지 56년간 역대 최다인 ‘20선’의 기록을 세웠다. 1982∼1987년 일본 총리(71∼73대)로서 국철, 담배, 전력 민영화 등에 나서며 강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총리 재임 기간은 1806일로 전후 총리 중 아베 신조(安倍晋三),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등에 이어 역대 5번째다. 정계 은퇴 후에는 싱크탱크인 ‘세계평화연구소’ 회장을 지냈다.
그는 대표적 ‘지한파’ 정치인으로 꼽힌다.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일본 총리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총리에 오른 이듬해인 1983년 첫 해외 방문지로 한국을 택했다. 2010년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이때를 “대미(對美) 관계 개선의 첫걸음이자 아시아 정책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당시 그가 목욕탕에서 한국어를 연습해 ‘한국어 만찬사’를 읊고, 만찬 후 술자리에서 가요 ‘노란샤쓰의 사나이’를 부른 것은 유명하다.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막역한 사이가 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도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그는 일본 우경화를 이끈 ‘보수의 원류’라고 평가받는다. 20대에 전쟁을 경험한 후 혁신 대신 국가와 전통을 지키는 보수의 길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평화 헌법’을 개정해 군대 보유, 자주 방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5년 광복절에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총리로는 처음 참배해 한국 등 주변국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참배를 중지했고 2005년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게 참배를 멈출 것을 촉구했다.
외교에서 특히 미국과 관계에 주력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각각의 이름을 딴 ‘론 야스’라고 불리며 밀월 관계를 구축했다. 1983년 11월 일본을 찾은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다다미방에서 일본식으로 무릎을 꿇고 차를 대접했다. 이런 배경에서 고인은 “일본 열도를 절대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처럼 만들겠다”는 뜻의 ‘불침항모론’을 언급했다. 당시 소련을 견제하는 미국에 일본이 소련에 대항하는 중요 전초기지임을 내세우며 미일이 뭉쳐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미일 동맹,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 등 전후사의 큰 전환점에 있어서 지도자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자민당은 고인의 장남인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 참의원 의원명으로 가족장을 치른다고 전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