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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 사는 필립 씨(44)는 아들이 중학생일 때부터 ‘금융 조기교육’을 시켜왔다. 필립 씨는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에게 용돈과 별개로 주식투자용으로 매달 1000크로네(약 13만 원)를 준다. 물론 아들이 이 돈으로 아무 주식이나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투자하고 싶은 주식을 고른 뒤 왜 그 주식을 골랐는지 아버지에게 설명해야 한다. 필립 씨는 “금리가 낮아 예금만으로는 수익을 얻기 어렵다”며 “아들은 나보다 저금리 환경에서 더 오래 살아야 하므로 어릴 때부터 투자 요령을 배우면 향후 경제적 자립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금융교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저금리, 저성장으로 자산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제로이코노미 시대를 맞아 금융 및 투자의 개념을 이해, 활용하는 ‘금융 리터러시(literacy·이해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금융 선진국들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계층을 상대로 맞춤형 금융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금융교육을 의무화하거나, 파생상품과 같은 복잡한 상품을 가르치는 곳도 있다.
● “내 아이 지갑 든든하게”…금융도 조기교육
덴마크 금융협회는 매년 한 주를 금융교육 주간으로 지정하고 희망 중학교의 신청을 받아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기본적인 경제지식을 비롯해 지출 계획을 짜는 방법, 대출 이자 계산법 등을 가르치는데 신청학교가 꾸준히 늘어 올해는 전국 750여 개 학교에서 교육을 진행했다. 미국도 금융 조기교육을 위해 2012년 ‘일찍 시작하기(Starting Early for Financial Success)’ 전략을 세웠다. 부모를 위한 금융교육 홈페이지를 개설해 3세부터 20대 초반까지 연령대별로 필요한 교육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스웨덴에서는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금융교육을 한다. 스웨덴 금융감독원은 출산을 앞둔 예비 부모에게 산부인과를 통해 금융교육 책자를 전달한다. 처음 부모가 되는 이들을 위해 앞으로 가계의 소비·투자계획을 어떻게 짜야할지 미리 안내해주는 것이다. 데레스 에크만 스웨덴 금감원 금융교육실장은 “금융시장이 점점 복잡해지기 때문에 교육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정부가 나서 금융 의무교육
각국이 금융교육에 열을 올리는 건 제로이코노미로 자산 형성 기회는 줄어드는데 아직도 금융을 잘 알지 못하는 ‘금알못’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재무설계사로 일하는 니키타 모로소브 씨(24)는 “사람들을 만나 투자에 대한 고민을 들어보면 은행에서 예금만 할 줄 알지, 주식이나 채권 투자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캐나다 역시 모든 주에서 정규 교육과정에 금융교육을 포함시키고 있다. 수학이나 사회 같은 필수과목 과정 중에 금융이나 소비생활에 대한 부분을 가르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막연히 갖고 싶은 것’과 ‘반드시 필요한 것’을 구분해 절약을 습관화하는 연습을 시킨다.
일본은 금융청 주도로 ‘금융 이해력 지도’를 만들었다. 지도에는 초중고생, 대학생, 직장인, 고령자 별로 필요한 금융교육 내용이 정리돼 있다. 관련 종사자들이 이를 참고해 커리큘럼을 짠다. 일본 교린대가 필수과목으로 정한 ‘머니플랜’ 과목도 금융 이해력 지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지도에 따르면 대학생은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돼 있다.
● 파생상품 같은 복잡한 상품까지 가르쳐
아시아 금융허브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2003년부터 대국민 금융교육 프로그램 ‘머니센스’를 통해 복잡한 금융상품에 관한 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마지막 단계인 ‘투자 노하우’에선 파생상품과 같은 어려운 금융상품을 배우게 된다. 실제로 머니센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상장지수펀드(ETF)나 구조화 예금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다.
남건우 기자 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