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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노조, 고립 극복 못한채 세상 바꾸자는 건 사기에 가까운 일”

입력 | 2019-12-02 03:00:00

현대車 노조위원장의 반성문




현대자동차 현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노조의 반성과 변화를 촉구한 것은 자동차 산업계의 구조적 변화가 그만큼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자들은 이미 인력 감축을 통해 친환경·자율자동차라는 거대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가 과거와 같은 습관성 파업으로 임금 인상만을 요구해서는 생존조차 어렵다는 인식이 노조 내부에서도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1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하부영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지난달 21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주최한 ‘노동조합의 사회연대전략’ 세미나에서 “30년간 진행된 (정규직 중심의) ‘대공장 노동운동’은 임금과 복지 확대 등 내부 조합원만 바라보는 속성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가 자동차산업의 변화나 사회 양극화 문제 등을 고려하지 못한 채 조합원의 처우만 개선하는 노동운동을 이어왔다는 지적이다.

하 위원장은 1977년 공업고등학교 실습생 자격으로 현대차에 입사했고 2017년 10월 임기를 시작했다. 내년 정년퇴직(만 60세)을 앞두고 있다.

그는 이날 행사에서 “나 역시 (2017년 선거 당선 후) 생각했던 민주적 노조운동에 대한 꿈을 10분의 1도 펼쳐보지 못했다”면서 “차기 집행부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도 과연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하 위원장은 이런 취지의 발언을 각 후보자의 선거대책본부를 찾아다니면서 직접 했다고 한다. 현재 집행부가 현실적으로 많은 부분을 바꾸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차기 노조는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 눈앞에 다가온 미래차 시대


현대차 노사 고용안정위원회는 올해 10월 전기차 등 친환경차 비중 확대 전략이 예정대로 이뤄지면 인력의 20∼40%를 감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번에 노조 집행부 선거에 출마한 4명의 후보들은 모두 정년 연장이나 ‘전체 고용 보장’ 등을 내세우며 여전히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공약’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근본적인 변화에 따라 노조부터 먼저 바뀌겠다는 공약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노조는 위기감을 느끼면서 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스스로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노조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자동차산업의 변화와 함께 현대차 노조를 ‘귀족노조’로 비판하는 여론도 상당부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현 노조 집행부가 올해 8년 만에 파업 없이 사측과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단체교섭을 타결했을 때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특히 현대차 노조 내부에서는 미래차 등장에 따른 구조조정 위기가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자신들의 행보가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최소한의 국가 차원의 지원도 받기 어렵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하 위원장 역시 토론회에서 “사회적 고립을 극복해야 (구조조정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인력 감축 돌입한 글로벌 완성차 업계


이미 현대차를 제외한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자국 내 임직원들도 대규모 감원에 나설 정도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독일 다임러그룹(메르세데스벤츠)은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전기차 등 시장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까지 전 세계에서 1만 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폭스바겐그룹도 3월 7000명의 인력 감원 계획을 발표했고, 계열사 아우디 역시 최근 2025년까지 9500명을 줄이기로 했다. 6000명 이상의 구조조정 계획을 공개했던 BMW그룹은 노사가 2020년 1월부터 직원들의 성과급을 대폭 줄이는 것에 합의했다. 미국 GM 및 포드와 일본 닛산 등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작업을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유력 완성차 업체 중 대규모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하지 않은 곳은 사실상 현대차가 유일하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현대차 인도 첸나이 공장은 완성차 1대를 생산하는 데 17시간밖에 안 걸려 울산공장보다도 생산성이 1.5배 높다”며 “노조가 고용 안정을 이야기하려면 생산 효율을 높이는 방안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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