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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외교안보 事故 후폭풍 몰아닥칠 文후반기

입력 | 2019-12-02 03:00:00

文, 전반기 정책 실패 청구서… 지소미아 9·19합의 등 줄줄이
70년 血盟이탈, 中붙으려는 ‘3不’… ‘주권 포기·동맹 자해’ 최대 패착
美軍철수 ‘둠스데이’ 맞지 않길




박제균 논설주간

때론 문재인 대통령이 안됐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순 없다. 특히 내정(內政)과는 달리 상대국이 있는 외교안보 문제에선 하고 싶어도 해서는 안 되거나,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외교안보 참모의 역할이다. 불행하게도 문 대통령 주변에는 눈을 씻고 봐도 그런 참모가 보이지 않는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정책의 대표적인 전례(前例)로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동북아균형자론을 들 수 있다. 쉽게 말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건데, 그럴 힘이나 실력이 없으니 사실상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노 전 대통령에게는 직을 걸고 간언하는 외교안보 참모들이 있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이라크 파병, 평택 주한미군·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그 고언(苦言)을 수용한 노무현의 외교적 성과다.

물론 문 대통령 주변이 예스맨들로 둘러싸인 가장 큰 책임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있다. 국가의 안위(安危)가 걸린 한미 동맹과 북핵(北核), 동북아 외교의 베테랑들을 배제한 채 말 잘 듣고, 쉬워 보이는 비전문가들을 외교안보 핵심으로 중용(重用)한 탓이다. 그 결과 집권 전반기에 ‘외교적 사고(事故)’ 수준의 실책을 여기저기 내질러 놓았다. 이제 집권 후반기, 그 청구서가 날아올 시간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을 둘러싼 국격(國格) 추락은 그 시작일 뿐이다.

지소미아 소동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일본 아베 정권이 뜬금없이 경제보복의 칼을 빼든 데서 비롯됐다고 본다면 아주 좁게 보는 것이다. 그 아래 한일 두 나라 간의 오랜 불신, 특히 정권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깔아뭉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아베 정권의 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아무리 부실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어도 국가 간 합의를 그렇게 천덕꾸러기 취급하진 말았어야 했다.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이후 한일 양국이 보인 공치사(功致辭) 경쟁은 더 가관이었다. 일본에서 ‘퍼펙트게임’ 소리가 나온 것도 한심했지만, 차라리 그런 일본에 “국내 정치 때문에 그러는 걸 이해한다”고 여유 있게 받아넘겼으면 어땠을까.

하기야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보복을 한답시고 느닷없이 지소미아 종료를 갖다 붙인 게 우리 외교안보팀의 실력이다. 지소미아는 한일 군사정보 교류의 측면에서 보면 아직은 큰 의미가 없다. 미국의 아시아 양대 동맹인 한미, 미일 동맹을 묶어주는 연결고리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한미일 삼각 체제로 북-중-러 체제에 대응하려는 미국 세계전략의 일환이다. 거칠게 말하면 지소미아는 대일(對日) 문제라기보다는 대미(對美) 문제다. 그것도 모르고 대일 보복 카드로 꺼내들었으니 미국이 열 받은 것도 당연하다.

이런데도 문 대통령은 현 외교안보팀을 문책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문책이 곧 외교안보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인가. 아무리 아큐(阿Q) 식 ‘정신 승리’를 외쳐봤자 외교안보 정책 실패의 후폭풍이 몰아닥칠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당장 우리 안보의 안방 문을 열어준 9·19 남북 군사합의가 발등의 불이지만, 가장 우려되는 건 70년 혈맹(血盟) 미국을 이탈해 중국에 붙으려는 움직임이다.

모레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한국에 온다. 주한 대사라는 사람도 ‘후과(後果)’ 운운하며 사실상 한국을 협박하는 판이니, 왕이가 얼마나 위세를 떨지는 안 봐도 훤하다. 게다가 그가 5일 만나는 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주중 대사 시절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천자를 향한 충성’으로 해석될 ‘만절필동(萬折必東)’이란 문구를 남긴 사람 아닌가.

그런 중국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달랜답시고 ‘3불(사드 추가 배치 불가, 美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삼각동맹 불가) 약속을 해준 것은 문재인 외교의 최대 패착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사실상 안보주권의 포기이자 갈수록 미중(美中) 각축이 치열해질 동북아에서 우리의 발을 묶은 족쇄요, 한미 동맹을 갉아먹을 독소조항이다. 이런 식의 자해적 외교안보 정책이 지속되는 한 그 터널의 끝에선 주한미군 철수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문 정권 후반기에 그런 ‘둠스데이(doomsday·운명의 날)’가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